지난달 3일 자본시장법 개정안 한 건이 국회에 발의됐다. 의안번호 2221068, 오기형 의원 등 11인이 이름을 올린 이른바 ‘한국형 베어허그’ 법안이다. 새롭게 손 본 조문은 세 개뿐이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시장의 평가는 둘로 갈렸다. 한쪽은 “시장 친화적인 저평가 해소 수단”이라 하고, 다른 쪽은 공격자와 방어자 사이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생긴다고 한다. 여당은 연내 처리 방침을 밝혔다. 조문 세 개가 이만한 진통을 부르는 이유는 이 법안이 이사회의 오랜 침묵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베어허그는 인수 희망자가 현재 주가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이사회가 쉽게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개정안은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수제안이 있는 경우 이사회가 접수 내용과 검토 계획, 판단 결과를 주주에게 공시하고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 표시를 의무화했다.
개정안은 공개매수에 관한 이사회의 의견표명은 “할 수 있다”에서 “해야 한다”로 바뀐다. 주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개매수라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 절차를 거쳐 의견을 내야한다. 어기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사유에는 ‘주주’라는 두 글자가 추가된다. 인수 제안을 받은 이사회는 접수 내용과 검토 계획을 즉시 공시하고, 판단 결과를 논의 경과와 사유까지 붙여 다시 공시해야 한다.
배경에는 숫자가 있다. 제안 이유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약 69%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에서 거래된다. 미국은 약 20%, 일본은 약 36%라고 한다. 그동안 인수 제안을 받은 회사의 답은 대개 한 줄이었다. “확정된 바 없다.” 제안 가격은 지배주주와 경영진만 알았고, 일반주주는 자기 주식에 누가 얼마를 불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난해 7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됐지만, 정작 회사에 값이 매겨지는 순간에는 의무를 확인할 창구가 없었던 셈이다.
우려에도 근거는 있다. 현행법상 제안 단계에서는 자금 증빙이 필요 없다. ‘떠보기 제안’ 하나로 주가가 출렁이고 이사회가 공시에 끌려나올 수 있다. 비슷한 제도를 둔 미국이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같은 방어수단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대편에서는 실효성 자체를 의심한다.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에 의존해 온 국내 사모펀드가 공개적인 적대적 인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아, 결국 외국계 펀드에 기회만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강하다는 비판과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한 법안을 두고 동시에 나온다.
두 비판이 만나는 지점은 시행령이다. 발의 전 거론되던 ‘진지한 인수제안(Bona Fide Offer)’의 판단 기준도, PBR 0.5배 미만이라는 적용 대상 요건도 조문에는 없다. 어떤 제안이 공시 대상인지가 통째로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다. 기준이 느슨하면 허위 제안이 공시를 타고 시장을 흔들고, 지나치게 엄격하면 제도는 쓰이지 않는다. 법안의 성패는 여기서 갈린다.
해외의 기준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에서 대상회사는 공개매수 개시 후 10영업일 안에 수락 권고, 거절 권고, 중립, 입장 표명 불가 중 하나를 이유와 함께 공시해야 한다. 다만 이 의무는 공개매수가 개시된 뒤에 적용되고 단순한 인수제안에는 미치지 않는다. 제안 단계부터 공시를 요구하는 한국의 개정안이 더 엄격한 셈이다.
일본은 2023년 8월 경제산업성의 ‘기업매수에 관한 행동지침’ 으로 이사회의 검토·설명 원칙을 세웠다. 작동 방식을 보여준 것이 세븐앤아이홀딩스다. 캐나다 쿠슈타르는 주당 14.86달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18.19달러로 약 22% 올려 다시 제안했다. 세븐앤아이는 회사 가치를 과소평가한 제안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절이 끝은 아니다. 세븐앤아이홀딩스는 CEO를 교체하고 슈퍼마켓 사업을 매각했으며 2조 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거절의 대가는 그 값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었다.
한국 이사회가 준비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개정안이 통과돼도 이사회가 거절할 권리는 남는다. 다만 거절을 위해 절차에 기반한 근거가 필요할 뿐이다. 이사나 경영진이 지체없이 이사회에 보고하는 체계와 공시 대상 여부를 가리는 내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해상충이 우려될 때 독립이사 중심의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독립된 재무·법률 자문을 받을수 있도록 절차를 미리 갖춰야 한다. 검토 과정은 문서로 남긴다. 주가가 장기간 순자산가치를 밑도는 회사라면 밸류업 계획과 자본배분 정책부터 다시 점검할 일이다. 기업가치 제고가 곧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침묵할 권리다. 누군가 회사에 값을 매기는 순간 “확정된 바 없다”는 한 줄은 더 이상 답이 되지 못한다.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나면 시행될 예정이다. 그 전에 이사회가 준비해야 할 답은 하나다. 우리 회사의 값은 얼마이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문성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 부센터장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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