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폭우가 내릴 땐 일단 피하라’

오래된 격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이를 만회하려고 ‘반발’을 세게 했다간 폭풍우에 휩쓸려갈 수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현미경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그룹도 ‘일단 멈춤’ 상태다. 폭우는 피하되 비가 갠 다음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라고 내부적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 ‘올 스톱’ 삼성= 삼성은 매년 12월초 사장단 인사를 해왔다. 철저한 실적 주의에 바탕을 두고, 좋은 성과를 낸 부서장은 연임이 그렇지 않을 경우엔 좌천성 인사로 그룹 내 ‘장수(將首)’들을 관리해왔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사장단 인사를 한차례 미뤘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와 특검 수사 등이 예정돼 있어 어떤 방향으로 사안이 튈지에 대해 상황을 본 이후 움직임을 정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갤럭시S7 발화 사건까지 겹치면서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시일이 갈수록 악화됐다. 사장단 인사 시기가 1월초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은 지난해 말께엔 ‘특검 종료시’로 미뤄졌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2시간에 이르는 고강도 특검 수사를 받고 온 뒤에는 ‘기약이 없어졌다’는 얘기가 그룹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사장단 인사 지연 배경이 그룹 수장의 사법처리 범위와 관련이 깊었다면 현재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그룹내 2인자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까지 사법처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검이 오는 3월말께까지 이어질 것으로 고려해 3월말 사장단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현재로선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장단 인사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분위기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 수사를 받던 지난 12일 오전부터 13일 새벽까지 삼성 미래전략실 임직원 대부분은 회사 사무실에서 비상대기 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가는 주인을 배신한다?= 삼성그룹의 경영 시계가 ‘딱’ 멈춰버린 시점은 지난해 11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일 검찰은 삼성그룹의 심장부인 미래전략실 등 핵심 사무실 수곳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2주동안 검찰은 삼성그룹을 상대로한 3번의 압수수색을 더 실시했다.

과거처럼 대단위 서류뭉치를 털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사해가는 방식이긴 하지만, 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씩 한두마디를 던지곤 하던 삼성그룹 사장단들이 굳게 입을 다물게 된 것도 11월 이후부터다.

흥미를 끄는 부분은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이 ‘삼성전자의 위기’와 함께 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8일 삼성전자 주가는 0.24% 상승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는 11월 17일 150만원대로 추락한 이후 급반등하며 코스피 시장을 부양하는 역할까지 했다.

최근 두달 사이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을 최저점과 최고점을 비교하면 최저점은 11월 15일 153만9000원이었고, 최고점은 지난 1월 12일 194만원이었다. 두달도 안되는 사이 삼성전자의 주가는 주당 40만원 넘게 급등한 것이다. 사실상의 총수가 특검 수사를 받고 경영 환경이 시계제로에 빠진 삼성전자의 주가가 고공행진 하는 ‘모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자별로 분석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지난해 11월 12일과 13일에는 각각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후 첫 거래일인 14일에는 삼성전자의 주가는 2.82% 하락했다. 그룹내 3인자 장충기 차장이 소환 조사를 받은 18일에는 삼성전자의 주가는 1.15% 상승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장에 출석해 의원들로부터 질의를 받았던 지난해 12월 6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1.75% 상승하며 174만8000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날이기도 했다. 2016년의 마지막 주식 거래일인 지난해 29일에도 삼성전자의 주가는 0.78%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가를 또다시 갈아치우기도 했다. 12월 29일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소환 조사한 날이다.

그룹 2인자와 3인자(최지성·장충기)가 나란히 특검에서 고강도 조사를 받은 지난 1월 9일에도 삼성전자의 주가는 2.82% 급등했다. 특검 수사의 완결판 격인 이재용 부회장을 특검이 소환하던 지난 12일에는 삼성전자의 주가는 1.36% 상승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에 비해 하루 뒤인 13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비교적 큰 하락폭인 3.45%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주가가 13일 큰 폭으로 하락한 이유에 대해 중국의 반도체 투자 소식과 삼성전자의 하만그룹 인수 차질 가능성이 알려졌기 때문이라 분석하고 있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칭화 유니그룹이 우한, 청두, 난징에 7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시설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번 뉴스로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가 숨고르기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13일에는 하만 주주들이 하만 CEO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하만은 삼성전자가 80억달러(9조6000억원)에 매입키로 한 회사로, 세계 최대 전장업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가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주식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13일 기준 50.87%다. 외국인들은 삼성전자의 실적에만 관심이 있지 오너리스크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며 “숫자로 표시되는 기업의 본질 가치만이 중요하다고 외국인들은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