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2·3세 잇따라 은퇴 국내 상속세 OECD 평균 두배 법 개정안은 정쟁 속 국회 공전 ‘富의 대물림’ 부정적 여론 여전

재계에 ‘상속세 포비아’가 번지고 있다. 산업화시대를 이끌던 재계 1ㆍ2세대가 잇따라 타계 혹은 은퇴하며 승계 수요가 급증하자 천문학적인 상속세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양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징벌적 상속세율로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속출하며 논란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의 99%가 가족기업임을 감안할 때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진퇴양난이다. 상속세를 낮추고 안정적인 지배구조 아래 투자 증가와 고용 창출 등 사회기여를 유도해야한다는 인식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가업 승계는 부(富)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해 관련 개정법안은 국회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재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상속세율은 최고 50%(최대주주 할증시 65%)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26.3%) 보다 두배 이상 높다.

지난 8일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는 천문학적인 상속세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관련기사 12면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지분을 물려 받아 ‘3세 경영’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지만 17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경영권 방어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는 비단 한진그룹의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높은 상속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최대주주 지위를 박탈 당하거나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OCI의 이우현 부회장(당시 사장)은 2017년 부친 (故) 이수영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경영권을 넘겨받았지만, 2000억원대의 상속세를 부담하기 위해 상속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서 최대 주주에서 3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이 부회장은 작년 11월 2대 주주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 유니더스의 김성훈 대표는 상속세 50억원 부담을 이유로 경영권을 포기했고,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은 150억원의 상속세 부담을 못이겨 회사 지분 전량을 중외홀딩스에 매각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타계로 물려 받은 지분에 대한 상속세 7200억원을 전액 납부하는 정공법을 택해 관심이 집중됐다.

승계 준비가 취약한 중견ㆍ중소기업은 더 심각하다. 승계를 계획 중인 중소기업은 지난해 58%로 전년(67.8%)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승계를 포기하겠다는 기업이 10곳 중 4곳에 이른다는 얘기다. 가업 승계의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는 역시 ‘상속세 등 조세 부담’(69.8%)이 꼽혔다.

가업 승계를 유도하기 위해 가업 상속재산 중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긴 하지만 대상 조건이 까다로워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런 지적을 반영해 공제 요건을 완화하고 공제액을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가 여야 정쟁으로 대치 상태를 이어가면서 관련 법안은 기획재정위에 계류 중이다.

개정법률안에는 공제 대상 기업을 상속 직전 3개년의 연평균 매출액을 현행 기준 3000억원에서 최대 5000억~1조2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공제 규모도 최대 500억원에서 최대 1000억~2000억원까지 늘리는 방안이 담겼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속세 제도를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면서 “할증된 최고 세율 65%는 ‘사망세(death tax)’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업상속공제제도 확대 논의가 나오지만 보다 전향적인 상속세 완화나 폐지가 더욱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세 인프라가 갖춰진 만큼 상속세를 소득세보다 높지 않도록 낮추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천예선ㆍ이세진 기자/cheon@


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