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달 초 뷰티제품, 산업용 냉난방기, 스포츠용품 분야 18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무역사절단과 함께 러시아와 폴란드 2개국을 방문했다. K-뷰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현지의 많은 바이어와 유통기업 구매 담당자들이 성능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한국 중소기업 제품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 제품 중 일부는 곧 러시아, 폴란드의 온·오프라인 화장품 쇼핑몰에 입점해 현지 소비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특히 올해 한국과 수교 30주년을 맞은 폴란드에서는 무역사절단과 폴란드 경제인들이 참가하는 기념 리셉션이 열렸다. 행사에서 만난 폴란드 기업기술부의 고위 관료는 “한국이 폴란드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고 롤모델”이라 강조해 필자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대우전자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투자는 최근 LG화학의 배터리 공장 준공, 삼성의 연구·개발(R&D)센터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 건설 발표로 이어지며 첨단 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폴란드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K-뷰티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어 그야말로 폴란드는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 거점이자 협력 파트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와 돈독한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한 폴란드는 ‘유럽의 한국’이라 해도 될 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주변 강대국에 의해 지배받으면서 무려 123년이나 나라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가 하면 공산정권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이런 역사의 굴곡을 꿋꿋하게 견디고 이제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나라로 성장했다. 지난 70년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높은 경제성장률로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저력을 폴란드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수도 바르샤바의 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구소련 시대 때 지어진 투박한 건물이 아픈 역사와 어두운 과거를 보여준다면, 바로 옆 블록에 들어선 현대적 외관의 고층 건물과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중부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폴란드의 현재를 반영하는 듯 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이곳이 쇼팽의 나라이자 세계 과학에 큰 족적을 남긴 코페르니쿠스와 마리 퀴리를 낳은 문화·과학 강국임을 느끼게 된다. 특히 구시가지에 자리한 성십자가 성당은 폴란드의 국보인 쇼팽의 심장이 있는 곳이다. 20세의 어린 나이에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한 쇼팽은 살아생전 고향 땅을 밟지 못했는데 그의 사후 누이의 간곡한 바람으로 쇼팽의 심장만은 바르샤바에 안치됐다는 것이다. 이국땅에서 고국의 어려운 상황을 슬퍼하며 음악으로 민족의 아픔을 같이하고 폴란드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했던 쇼팽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라를 잃고 만주로 사할린으로 떠난 뒤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우리 민족의 아픔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난 30년간 체제적, 경제적, 사회적 급변에 잘 대응하며 발전해온 폴란드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급등하는 임금, 민족주의로 흐르는 정치, 서유럽을 향한 두뇌 유출 같은 문제와 더불어 외국자본에 의존해 유럽의 생산기지로 성장했으나 여전히 자체 산업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가 글로벌 무역전쟁,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제조·기술의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는 변곡점에 선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폴란드 방문기간 중 만난 한 현지 경제인이 “코페르니쿠스가 기존의 지구 중심 우주관을 태양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것처럼 한국과 폴란드에게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