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신격호 명예회장 도전 역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9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어갔다. 이로써 ‘한강의 기적’ 1세대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에 마침표가 찍혔다.

‘엉뚱한 사람’ 신격호는 ‘별난 생각’으로 마천루 서울의 꿈을 현실이라는 도화지에 옮겨 그렸다. 마천루는 신 명예회장의 도전의 역사이자 기업보국(企業報國·기업을 일으켜 국가에 일익을 담당한다)의 신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허벌판 잠실벌에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소공동 롯데타운의 심장 역할을 했던 롯데호텔은 신 명예회장의 ‘한국의 마천루’ 첫 프로젝트였다. 60년대 말 무모한 사업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신 명예회장은 호텔 건설에 나선다.

롯데호텔은 장장 6년여의 공사 끝에 1973년 마침내 문을 연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달러가 투입됐다. 변변한 관광상품도 없던 당시 이같은 금액을 투자해 호텔을 지은 것은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관련기사 3·4·5면

신 명예회장은 이렇게 술회한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준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관광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신 명예회장에게 마천루는 단순히 더 높게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감한 결단과 신념은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을 오픈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명예회장의 ‘베르테르 열정’에는 쉼이 없었다. 그의 별난 생각은 잠실벌로 옮겨갔다.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관광보국에 대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은 세계 최대의 실내 테마파크 조성으로 이어졌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신 명예회장의 꿈은 더 원대했다. 석촌호수 서호를 중심으로 건설 중이던 롯데월드와 함께, 석촌 동호를 중심으로 종합관광단지(당시 명칭 ‘제2롯데월드’)를 건설해 잠실지구를 한국의 랜드마크로 키워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 롯데는 1982년 제2롯데월드사업 추진 및 운영 주체로 롯데물산을 설립하고, 1988년 1월 서울시로부터 사업 이행에 필요한 부지 8만6000여㎡를 매입했다.

하지만 제2 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신 명예회장에겐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지금은 서울의 랜드마크로, 아니 한국의 랜드마크로 우뚝선 롯데월드타워가 2017년 문을 열기까지 장장 3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신격호의 도전과 정열이 고스란히 담긴 123층 마천루는 2020년 1월 19일 그의 영면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