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직물회사서 석화·이통 확장

반도체·바이오 사업 씨앗 뿌려

‘산업보국’·‘인재보국’ 철학 주목

SK “추모행사 없이 보낼 예정”

위쪽부터 ① 폐암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② 故 최종현 회장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③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인재의 숲’으로 변한 모습. 원 안은 故 최종현 회장과 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 ④ 故 최종현 회장(왼쪽)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최종현 회장은 제 2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외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SK 제공]
위쪽부터 ① 폐암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② 故 최종현 회장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③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인재의 숲’으로 변한 모습. 원 안은 故 최종현 회장과 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 ④ 故 최종현 회장(왼쪽)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최종현 회장은 제 2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외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SK 제공]

SK그룹의 기틀을 다진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오는 26일 22주기를 맞는다. SK그룹은 별도의 추모행사 없이 조용히 보낼 예정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경제 침체 속에 최종현 선대회장의 도전정신과 위기극복 DNA가 재조명받고 있다.

최 선대회장은 SK그룹의 2대 회장으로 현(現) 최태원 회장의 부친이다. 창업주이자 형이었던 최종건 회장이 48세 나이로 타계하자 최종현 선대회장이 미국 유학중 귀국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1973년 회장에 취임한 최 선대회장은 당시 직물회사였던 선경을 에너지와 석유화학, 이동통신사업으로 확장해 현재의 SK그룹 기틀을 세웠다. 또한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의 씨앗을 뿌려 그룹 미래 먹거리의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바이오 사업은 최 선대회장의 치밀한 준비와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는 1990년대 들어 에너지·화학 산업의 뒤를 이을 성장동력원으로 제약?바이오에 주목하고 1993년 제약(Pharmaceutical)의 영어 단어 첫 음절을 딴 ‘P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바이오 사업을 시작했다. SK그룹의 제약·바이오 회사인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를 지난해 식품의약국(FDA)으로터 신약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증시에 상장하며 결실을 맺었다.

SK그룹 시가총액은 SK바이오팜 상장으로 21일 종가 기준 약 133조원으로 확실한 2위로 자리매김했다. 자산총액은 약 225조원으로 재계 3위다.

최 선대회장은 1970년대 후반 일찌감치 반도체 사업가치도 알아봤다.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다가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었지만 그로부터 30년 뒤인 2011년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현재 반도체 사업은 그룹내 영업이익 80%를 창출하는 최고의 캐시카우가 됐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당시 “선친이 가졌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최 선대회장은 국가 위기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청와대를 찾아 “비상 조치를 늦추면 나라 경제가 큰일 난다”며 특단의 조치를 건의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에 앞서 1970년대 석유파동 때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한국을 석유금수국가로 분류하자 정부의 요청을 받고 사우디 왕실과 접촉, 야마니 석유장관을 만나 1973년 12월부터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전량을 사우디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5년 뒤 2차 석유파동 때도 사우디로부터 하루 5만 배럴 공급약속을 받아냈다. 사우디로부터의 원유공급 경쟁력은 1980년 공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유공)의 인수로 이어져, 오늘날 SK이노베이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서는 최 선대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1992년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인 점수차로 KT에 이어 제2 이동통신 사업자에 선정됐지만,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 관계라는 점에서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사업권을 일주일만에 반납했다. 당시 최 선대회장은 10년이상 공들인 사업을 반납해선 안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충분히 준비했고 실력을 갖췄으니 다른 기회가 올 것이다. 오해 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부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도록 하자”며 정면돌파를 택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4년 제1이동통신 사업자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오늘날 국내 최대 이통사인 SK텔레콤으로 키웠다

최 선대회장의 ‘산업보국’ 신념도 남달랐다. 그는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라며 개인이나 기업의 영달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경영을 강조했다.

인재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으로 ‘장학퀴즈’가 꼽힌다. 또 1974년 세계적 학자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2019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3500여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해외 명문대학 박사 780여명을 배출했다.

SK그룹은 최 선대회장 22주기에 별도행사 없이 차분한 추모의 분위기로 보낸다는 방침이다. 최태원 회장과 가족, 주요 경영진들은 예전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선영에서 추모식을 했지만 이젠 4월 창립기념일에 최종건, 최종현 회장 추모행사를 모아서 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4월 8일 그룹 창립 67주년을 맞아 ‘메모리얼 데이’ 온라인 추모식을 가졌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