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서로 죽고 죽인다. 목숨을 건 피 튀기는 싸움의 현장에서 한 노인의 외침이 들린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지난해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시장을 강타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명장면이다. 여전히 많이 소비되고 있는 이 장면이 최근 일부 대기업의 연이은 고율 임금 인상을 지켜보는 경제계의 복잡다단한 속내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한 심정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이 올해 임금을 10% 가까이 인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업의 경쟁력 약화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을 가속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임금을 올린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여력이 충분했다기보다는 강성노조의 요구, 다른 기업과의 인재 확보 경쟁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표면상으로 나타난 높은 인상률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대·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올해 임금은 당연히 예년보다 많이 인상될 것’이라는 근로자들의 기대감이 커져 버렸다. 이로 인해 원자재 가격 급등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지급 여력이 없는 대다수의 기업까지도 큰 폭의 임금 인상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임금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는 연공급 중심 임금 체계, 강력한 노조 등으로 우리 대기업의 임금 상승 압력이 외국에 비해 매우 높은 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고율의 임금 인상은 해당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국가 전체의 산업경쟁력을 서서히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추후 위기가 닥쳐서 기업이 어려워지더라도 임금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이미 한 번 올라간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과도한 임금 인상은 청년층 채용 확대라는 사회적 요구 이행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제약해 우리 경제의 앞날까지 암울하게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기득권 노조와 MZ세대(1980년~2000년 초반 출생)의 성향이 다르다는 점도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업들이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만을 강조해 온 기득권 노조의 요구에 갇혀 있다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이나 공정한 보상 등을 더 선호하는 MZ세대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IT(정보기술)산업, 대기업 중심의 임금 인상으로 더욱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IT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의 고율 임금 인상이 이뤄지던 지난해 1~9인 사업체 근로자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49.4에 불과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과도한 임금 격차는 우리 중소기업 임금이 낮게 올랐다기보다는 대기업의 임금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가파르게 올랐던 것에 기인한다. 이는 중소기업과 저임금 근로자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과 근로 의욕 저하를 느끼게 해 일자리 미스매치와 계층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들의 고율 임금 인상은 임금 격차를 더욱더 확대시키고 상대적으로 인상률이 낮은 일자리에 대한 기피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 자명하다.
대기업발 임금 인플레이션을 경계하고 임금 격차와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에서 언급됐던 ‘깐부’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드라마처럼 생사를 건 상황에서 친구에게 남은 구슬을 모두 건네면서 ‘네 것, 내 것이 없는 깐부’를 외치는 사람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대기업·고임금 근로자 같이 ‘구슬’을 충분히 보유한 이들이 중소협력 업체를 비롯해 저임금 근로자, 청년층의 ‘깐부’가 되어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구슬 일부를 건넨다면 임금 격차 완화와 사회 통합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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