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자기 초등학교 동창과 만났다. 둘이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동창이 푸틴에게 물었다. “내 아이폰에 재미있는 앱이 있어. 불래?” 푸틴이 보겠다고 하자, 동창이 푸틴에게 자기 아이폰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지문으로 풀어 줄게.” 그러자 푸틴이 이렇게 대답했다. “왜? 네 아이폰은 다른 제품이야?”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드는 러시아의 한 케이블방송의 코미디 클럽이란 프로그램에 2016년 4월에 방송된 내용이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지문으로 모든 아이폰을 풀 수 있다는 말이다. 러시아인들은 흔히 무뚝뚝하고 웃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문화적 차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로 활약했던 벨라코프 일리야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틈새책방)는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인, 러시아 문화의 속살을 보여준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들이닥친 때 어린시절을 보낸 저자가 직접 겪은 러시아를 들려주며 러시아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 대해서도 사려깊게 짚어준다.
저자는 인종차별과 관련, 러시아에는 생소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는 다민족·다문화 국가여서 피부색, 머리색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우 인종주의자’로 불리는 스킨헤드도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외국인에 배타적이며, ‘외국인 혐오’가 있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90년대 소련 해체 직후 상대적으로 빈곤한 중앙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들어와 경쟁하면서 다른 외모와 문화를 지닌 이들에 대한 혐오문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후 시장경제로 진입하면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던 혼돈과 식량난 등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도 전한다. 이 시기를 지나 2000년대 들어 러시아 경제는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된다. 금요일 밤 밀라노에서 스키를 타다가 일요일 모스크바로 돌아와 월요일 출근하는 게 모스크바의 루틴이 됐을 정도로 부유해졌다.
그런 러시아가 ‘러시아식 주체 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걸게 된 건 2010년대. 소련을 비판했던 역사교과서가 사라지고 푸틴에 의해 스탈린 찬양이 시작된다.
일리야에 따르면, 러시아 기성세대는 소련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들이 변화의 가장 큰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참 일할 나이였던 3040세대들은 체제변화로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됐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이 4050세대가 됐을 때는 1020세대에 밀려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소련 시대엔 모든 걸 국가에서 해결해줬다. 대학도 집도 무료였다. 노후도 국가가 해결해줬다. 그러나 이들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준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고 여행할 수 있는 자유는 인정한다. 그런데도 자유란 말을 쓰지 않는다. 러시아인들에게 자유는 무질서와 동의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콘크리트 지지층과 극렬 반대층 사이에 있는 중도층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선 중도층이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가 투표일에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샤이 반푸틴층은 투표하지 않는다. 정치에 정말 관심이 없고 투표조작에다 푸틴을 갈아취워봤자 푸틴보다 못한 이가 도로 1990년대의 혼란을 가져올 테니 푸틴이 마음에 안들어도 그대로 놔두자는 쪽이다.
책에는 러시아는 북한의 친구인가?,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을 찬성할까?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러시아의 생각도 전하는데,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문패를 달았지만 설득력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벨랴코프 일리야 지음/틈새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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