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로 잠을 설치던 때의 일이다. 멀쩡한 에어컨을 켤 때마다 곤혹이었다. “아빠, 에어컨을 많이 쓰면 지구가 위험해.” 난감했다. ‘에어컨을 안 켜면 아빠가 위험해.’ 목까지 차는 말을 삼키고 땀에 눅눅한 침대를 뒤척였다.

학교에서 요즘 환경수업을 듣는 모양이다.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바다가 뜨거워져서 산호초가 망가지고 물고기들이 살 집이 없대” “바다엔 쓰레기로만 만들어진 섬도 있어”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더는 묻을 곳이 없다잖아”.

한 저녁 자리에선 아이가 전날 꿈얘기를 꺼냈다. “땅이 물에 모두 잠겼다”고 했다. 사실 꿈만은 아니다. 실제 제주도 앞바다 해수면은 최근 30년간 15cm가량 상승했다. 현 추세라면 2050년엔 한반도에서 여의도 면적 80배 이상의 땅이 물에 잠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아이의 눈빛과 말투다. 그 꿈을 무서워했다. 영화 ‘워터월드’는 1995년작이다. 지구 전체가 물에 잠긴다는 가정하의 SF영화다. 만약 이 아이가 워터월드를 본다면?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일까.

어느 시대나 아이들은 공포의 대상이 있다. 호랑이, 호환마마, 빨간 마스크, 홍콩할매귀신 등이 역대급 공포물이다. 요즘 아이들에겐 환경파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스크를 써야 했다. 고통스러운 PCR 검사를 수시로 받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나가서 놀 수 없다. 폭염·폭우·폭설은 일상이다. 어디 이름 모를 섬이 아닌 엊그제 갔다온 제주도가 점점 물에 잠긴다. 꿀벌이 대거 사라지는가 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가 돌연 동네를 뒤덮는다. 2003년생 그레타 툰베리는 세계적 환경운동가다. 그가 처음 환경운동에 뛰어든 건 8살 때부터다. 어른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이후 등교를 거부하고 대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유엔본부에선 세계 주요 정치지도자를 향해 “여러분이 하는 말이라곤 돈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얘기뿐”이라고 외쳤다. 올해 12세인 라이언 히크먼은 병과 캔을 재활용해 수익을 얻고 이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기업가 겸 활동가다. 처음 환경에 관심을 둔 건 3세 때다. 당시 부모와 함께 재활용센터를 처음 방문한 후 지금까지 병과 캔을 줍고 다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수거해 재활용한 병과 캔은 150만개가 넘는다. 그레타 툰베리나 라이언 히크먼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우린 이유를 안다. 아이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환경을 파괴한 건 어른들인데 그 피해는 아이들이 겪는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래서 부끄럽다. 부끄러움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동력이다. “나 같은 아이가 할 수 있다면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열두 살 라이언 앞에서 병과 캔을 그 누가 멋대로 버릴 수 있을까.

아이들은 환경에 진심이다. 도덕이나 의무감이 아니다. 환경파괴는 이제 아이들에겐 생존의 영역이다. 전염병이나 귀신이 아이들 마음을 위협했듯, 환경파괴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몸서리친다.

이 정도 됐다면 이젠 더는 부끄러울 수 없는 노릇이다. “어른들이 미안해”로 시작해보는 거다. 그리고 그게 팩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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