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전 대법관이 9월 초 퇴임한 후 빈자리가 두 달 넘게 채워지지 않고 있다. 후임 인선 절차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7월 말 오석준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이후 100일을 훌쩍 넘기며 ‘역대 최장기 표류’라는 기록을 세우고서야 오는 24일 국회가 표결에 나서기로 했다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 공백이 석 달 동안 이어지면 그 여파가 1년은 간다”고 말했다. 이미 사건 심리에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김 전 대법관에게 배당됐던 330건의 미제 본안 사건 심리가 중단된 상태다. 새로 상고심에 오른 사건들의 경우 대법원 소부를 담당하는 12자리 중 공석을 제외한 11명의 대법관에게 11분의 1씩 사건이 더 배당되고 있다. 나중에 빈자리가 채워지면 인선이 지연되던 기간 다른 대법관들이 추가 부담했던 사건 수를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사건을 신임 대법관이 한 번에 돌려받게 된다. 사건이 쌓일수록 적극적인 심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도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는 그동안 토론만 열리다가 이제야 24일 두 건의 선고가 잡혔다. 8월 30일 전원합의체 선고 이후 석 달 만이다. 전원합의체의 경우 합의 과정에서 만장일치거나 압도적으로 표결이 되지 않으면 공석을 두고 결론내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에 그동안 표결 자체를 자제해왔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대법관 공석이 길어지면 단순히 한 자리가 부족한 만큼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전반적인 사건 처리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대법원은 대법관 공석이 없어도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많다는 고질적 문제를 이미 오래전부터 안고 있다. 9월 발간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이 처리한 총 본안사건 수는 4만3980건이었다. 전원합의체 선고에만 참여하는 대법원장과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3665건씩 처리했다. 올해는 공석이 생기고 그마저도 길어졌으니 부담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대법관 한 사람의 판단은 개별 사건에서 시민 각자의 삶에 구체적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판결을 통해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기준을 만들기도 한다.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법리가 그렇게 생겨났다. 미투 운동 확산 이후 성인지감수성도 성범죄 사건에서 유념해야 할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대법관 공석의 장기화는 법원의 재판 역량 손실과도 연결된다.
세상 모든 담론이 다뤄지는 것만 같은 국회도 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난 후 대법관 인선에 관해서 만큼은 조용했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마냥 미뤄졌을 뿐 그렇다고 추가 검증 필요성이 거론됐던 것도 아니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간만 흘렀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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