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vs 체크’ 어느쪽이 진짜 버버리?

“디자인 보험 드셨나요?”

디자인 특허가 한 기업의 경영 전략을 넘어서 사활을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뛰어난 디자인을 개발하고도 한순간에 ‘카피캣’ 업체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디자인의 보험’인 특허를 반드시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은 이제 업계 불문율이나 마찬가지다.

제조업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가운데 디자인이 세계 기업들의 주요 분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올 들어서만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한 디자인 및 기술 관련 국제 특허 소송이 지난해에 비해 배 넘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과거 반덤핑관세ㆍ세이프가드 등이 주요 보호무역 장벽이었다면, 이제는 디자인 지식재산권 등이 신보호무역 장치가 되고 있다.

▶디자인 특허전쟁=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디자인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소송은 기술 특허 침해보다 디자인을 둘러싸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디자인권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또 공정 거래와 기술이 근간이 돼야 할 세계 산업계에 애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논란도 일으켰다.

애플은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 평결에서 승소하며 일단 승전고를 울렸다. 삼성은 애플에 배상금 10억49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평결을 받았다. 반면 비슷한 내용의 한국과 일본 소송에선 삼성이 사실상 승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국 이기주의’라는 비판에도, 특허 소송은 이제 자국의 관할을 넘어 글로벌 경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계 대형 제약회사 화이자(Pfizer)는 발기 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알약의 디자인을 부당하게 모방했다며 한미약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화이자는 한미약품의 복제약 ‘팔팔정’에 대해 판매 금지와 이미 생산한 제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비아그라 디자인은 출원 당시인 1998년 전부터 외국에서 배포된 간행물을 통해 같거나 비슷한 디자인이 소개됐다”면서 “애초 신규성이 없어 팔팔정과 유사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도 여러 나라에서 ‘체크무늬 전쟁’을 벌이고 있다.

버버리는 대만에서 이른바 ‘버버리 체크’라고 불리는 흑백 체크무늬 상표를 특허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지난 3월 패소했다. 국내에서도 LG패션을 상대로 체크무늬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을 냈지만, LG패션으로부터 영업 방해라며 맞소송을 당한 상태다.

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와 국내 구두 브랜드인 금강은 말발굽 모양의 구두 디자인을 두고, 프랑스의 귀금속 브랜드 아가타와 또 다른 액세서리 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는 강아지 모양 펜던트를 두고 각축을 벌였다.

페라가모는 법원 조정을 통해 금강에 손해 배상을 받아냈지만, 아가타는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해 패소했다.

▶디자인 경영=누구에게나 공개돼 있고, 유행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디자인.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애매하다. 디자인의 가치는 수치화하기도 어렵다. 최근 독일 지방법원이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디자인 카피 소송을 기각 처리한 사례는 디자인권에 대한 지역별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말해준다.

이처럼 복잡성을 띤 디자인 특허는 어떤 기업에는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기업에는 하루아침에 복제품 업체로 전락하는 악몽을 안기기도 한다.

때문에 디자인으로 확전하고 있는 신특허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디자인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 경영은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시각적으로 권리화해 회사 수익을 창출하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일찍부터 디자인을 상표나 특허로 보호하고 있는 나이키, 리복, 애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디즈니의 경우도 미키마우스 캐릭터로 연간 무려 6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애플과의 디자인 전쟁으로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삼성전자도 이제 디자인 경쟁력에서 오히려 애플보다 한발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디자인 특허를 가장 많이 인정받은 기업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특히 자사에 디자인 특허 소송을 제기했던 애플보다 2.5배 많은 디자인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디자인 전쟁은 기업의 ‘부익부 빈익빈’을 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기업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디자인 특허를 확보해놓고 독점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과 후진국 기업은 단 한 번의 소송으로 사지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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