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요즘 사극에 출연하고 있는 주연 여배우들의 연기력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간혹 젊고 예쁜 여배우에게 가해지는 질투성 비난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그럴 만한 지적이다.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주인공 김태희의 연기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다. 김태희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연기력 부족 외에 캐릭터 설정에서도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희빈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은 사약받을 때 발광하는 모습이다. ‘장옥정’은 표독하거나 절절한 역대 장희빈 캐릭터와 차별화 하기 위해 옷을 만드는 직업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설정됐다. 장수들의 훈련장에 들어가 훈련복을 직접 입어 보고 동작을 해 가며 갑옷의 기능을 체크하는 장옥정의 모습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전문직으로서의 장옥정 스토리를 계속 이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장옥정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캐릭터가 돼버렸다. 사악한 희대의 요부가 아닌 장옥정은 신선하지만 임펙트가 없었다. 이렇게 미지근한 캐릭터를 단선적인 연기를 펼치는 김태희가 소화하기는 무리다. 김태희는 현대극보다 장면 전환이 훨씬 적은 사극에 출연하자 더욱 심심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녀인데도 클로즈업 효과가 적은 건 연기자로서의 표정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클로즈업을 자주 하고서도 자연스러운 표정과 연기를 보여줬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송혜교와 대비된다.
김태희는 지난 12년간 연기력 논란을 달고 살아 왔다. 김태희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아주 늙고 못 생겨지고 아줌마 혹은 할머니가 됐을 때야 연기력 논란 평가를 받지 않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지만, 현재의 연기력으로는 중년이 돼 연기해도 연기력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태희가 연기력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던 건 작품에서 예뻐보이려고 하지 않았을 때이다. ‘아이리스’에서 캐릭터에 몰입돼 액션 연기를 열심히 펼쳤을 때에는 연기력 논란이 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쁜 척하면 안 예뻐 보인다는 얘기다. 김태희가 예쁘게 보이려고 한다는 게 아니라 PD나 감독이 그렇게 유도한다.
천민의 삶에서 각성해 침방나인으로 궁에 들어가 있는 김태희가 조선 정가를 뒤흔들게 될 앞으로의 모습은 그리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 ‘장옥정’ 제작진도 전문직업인으로서의 김태희의 모습을 담는 데에는 한계를 느낀 모양이다. 최근 들어 갑자기 숙종 이순(유아인 분)과 장옥정의 멜로신이 많아진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멜로 장옥정’으로 승부를 본격화할 것 같다.
8회 말에 두 사람은 궁중의 빨래터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격정적인 키스신을 보여줬다. 사극에서 현대극보다 높은 수위의 키스신을 선보이는 건 제작진이 애가 타고 있다는 뜻도 포함된 것 같다. 6일 방송된 9회에서는 숙종 유아인이 김태희에게 백허그까지 시도했다. 먼 존재가 아닌 한 ‘남자’로서 다가가겠다고 작업멘트까지 날리면서. 김태희도 전하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숙종은 달리는 말에 다칠 뻔한 장옥정을 몸을 날려 구하려다 머리를 다쳤고, 이 때문에 장옥정은 궁에서 쫓겨날 위기에 봉착했다. 이 사이 수렴청정을 맡게 된 대비 김씨(김선경)가 인현(홍수현)을 중전으로 만들어버렸다.
숙종과 장옥정의 사랑에 시련과 위기가 온 셈이다. 어린 왕 숙종이 노회한 서인들의 음모와 도전으로부터 절대왕권을 지키기 위해 고독과 슬픔을 감내할수록, 장옥정이라는 여인이 더욱 가슴 속 깊숙이 들어온다. 애절한 사랑의 강도를 높여갈 것 같다.
이와 함께 김태희는 다음 작품에서 연기력 논란을 피하는 한 방법은 주연보다 조연을 맡는 것이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을 줄여주면서, 보다 개성 있는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C ‘구가의 서’에서 천방지축 말괄량이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담여울 역을 맡고 있는 배수지는 아직 연기가 능숙하지 못하지만 캐릭터로 커버하고 있다. 남장 외모나 성격 등 캐릭터와는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남장을 해도 청순하고 미모까지 보여줌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이승기(최강치 역)와 위험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이어갈지 기대가 된다.
KBS ‘천명’에서 제2의 장금이를 꿈꾸는 내의원 의녀 홍다인을 연기하는 송지효는 초반에 캐릭터에 몰입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예능인 ‘런닝맨’에서 뛰어다니는 느낌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다른 배우보다 먼저 캐릭터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못하면 조금은 홍다인이 ‘멍지효’로, 송지효와 같이 있는 이동욱이 개리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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