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0회> 바람에 맞서는 법 39
“웬만하면 살아서 돌아오도록!”
“개마고원에서 저는 민족을 위해 자살폭탄의 스위치를 누르겠습니다. 그 방법이 아니고는 노스 코리아 당국의 보호막을 뚫을 수 없습니다.”
“고맙군, 그럼 잘 가게. 저승에서 기쁘게 만나세.”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얘기 아닌가? N-Dos단의 밀명을 받고 떠나오던 날, 두목인 대령과 특공대원들 간에 나눈 대화였다. 블랙 이글스를 모는 드라이버만 해도 대령의 말을 시 구절처럼 암송하며 다녔지만 요르단 선수로 등록된 졸병 코-드라이버는 자살테러를 감행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 황당한 자식아, 상대방 적군에게 우리 얼굴을 내보이면 어쩌자는 게야? 미쳤다고 창문을 내려?”
베레모에 소령 계급장을 붙인 블랙 이글스의 드라이버는 여전히 시거를 질겅질겅 깨물면서 이렇게 호통쳤다.
“시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함께 죽어 없어질 팔자인데… 얼굴 좀 내보인들 어떠랴 싶었습니다.”
“팔자? 하긴, 그렇다. 어쨌거나… 봤나?”
“뭘 말씀입니까? 소령님.”
“낡은 머신, 치타의 드라이버 말이다.”
“…….”
1974년산 치타 역시 차창을 내리고 있었지만, 그 졸병이 드라이버 유호성의 모습을 확인했을 리 만무했다. 그 졸병이야말로 이제 갓 스물다섯을 넘긴 애송이였다. 남자 스물다섯이면 여자 근처에만 가도 ‘서는’ 나이다. 공자 왈, 30이면 립(立)이라고 했는데… 아, 실수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립’은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일 것이다.
“봤냐고!”
“못 봤습니다.”
부연 황사먼지 속이었지만 젊고 늘씬한 아가씨가 토플리스 차림으로 서 있는 판에 언제 1974년산 치타의 운전수를 볼 틈이 있었을까. 졸병은 얼굴이 붉어진 채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적군을 보지도 못하고… 적군에게 네 얼굴만 보여줬단 말이지? 그런 정신 상태로 대령님의 뜻을 받들 수 있나? 아가씨 젖가슴 보는 게 그토록 좋은가? 얼빠진 놈, 당장 신성한 머신에서 내려!”
“시정하겠습니다. 대령님.”
“잔소리 그만하고 내려!”
블랙 이글스는 울컥 제자리에 멈춰 섰고 스물다섯 살 어린 졸병은 빈손으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20 대 1의 경쟁을 뚫고 거사요원으로 선발된 그는 거사장면을 태블릿으로 촬영하여 대령에게 즉석 전달하고 함께 자폭하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졸병은 태블릿조차 머신에 남겨둔 채 황량한 벌판으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졸병이 머신의 문을 미처 닫기도 전에 블랙 이글스는 굉음을 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소령은 머신 뒷좌석에 얌전히 놓여 있는 그 졸병의 자살폭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르긴 해도, 작전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자살폭탄을 하복부에 두르고 개마고원 인근에서 블랙 이글스를 폭파시키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소령은 자살폭탄도 없이 그 졸병을 내쫓았다. 그에게 아리따운 연인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고비사막에 다다르기 전에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그를 쫓아내야만 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귀국도 못하고 떠돌이 생활로 생을 마감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졸병의 목숨을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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