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9회> 총칼 없는 전쟁 (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어째서 우리는 겁 없이 설치는 사람을 ‘겁 대가리 없다’고 하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제 정신으로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생각도 없고, 제 정신도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가리는 머리의 속된 말이니… 즉, 아무 생각이 없이 날뛰는 사람을 경멸하는 뜻이리라.
이를테면 유호성은 겁 대가리 없이 비포장 구비 길을 140km로 질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1974년 산 치타의 성능은 훌륭했다. 생겨먹기는 비루먹은 암말처럼 생겼어도 특히 코너링이 완벽했다. 시속 130을 넘나드는 중에도 차체는 정숙했고, 차체 높낮이도 바퀴 회전에 따라 제어되어 일정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미캐닉 현성애의 출중한 튜닝실력 때문이었지만… 유호성은 오로지 자기 운전실력 때문일 것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8기통 엔진에 6,000cc, 500마력의 힘을 지닌 후륜구동 차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달릴 수 있는 명실 공히 슈퍼 카로 바뀌어 있었던 것인데…
‘이거야 뭐, 한 쪽 손바닥으로 운전해도 가뿐하구먼.’
뱀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고개 길을 고속으로 달리면서 한쪽 손바닥만으로 핸들을 슬슬 돌리고 있었으니… 다른 한 쪽 손이 심심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실내가 마치 꽃님이의 치마폭 속처럼 아늑하게 여겨지던 중이었던지라…
그는 빈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꽃님이에게 전화를 걸어 알몸에 홑치마만 걸친 채로 나오라 하고 싶었지만… 명색이 요정 직원인 그녀가 벌써 업소에 출근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타자는?
“여보세요? 강유리 씨? 나예요. 유호성! 지금 5개국 횡단 랠리에 대비해서 치타를 워밍업 중인데… 당장 만날 수 없을까요?”
그는 달리는 치마 속에서 함께 뼈와 살을 태울 상대로 강유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며칠 전 요정에서 못 보일 꼴을 보이고야 말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만나서 명예회복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마침 전화 잘 주셨어요. 나도 만나서 할 얘기가 있거든요? 지금 어디지요? 네? 한탄강 어귀… 말고개 입구에서 2km 지점이라고요? 알았어요. 거기에 꼼짝 말고 서계세요. 단 1미터도 더 지나가면 안 돼요.”
강유리도 대번에 수락했다. 그녀야말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유호성과의 일전을 벼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사랑이냐 전쟁이냐! 어차피 뽑아든 칼! 며칠 전에 유호성이 요정 아가씨의 치마폭에 숨어있지만 않았더라도 벌써 결단이 났을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랑에 눈이 멀어 겁 대가리를 상실한 사람은 오히려 강유리였다. 북한 주최 전 세계 여자 프로골프 겨울대회에서 최하위에 머무는 성적을 거둔 것도 사랑의 열병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집안 원수인 유호성에게 반했을까… 하고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남녀관계는 염라대왕도 모른다는데 낸들 어쩌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럴게요. 빨리 오세요.”
명령하듯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유호성은 기고만장할 수밖에 없었다. 요정에서 그런 험한 꼴을 목격하고도 전화 한 통에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는 강유리가 실로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유호성은 말고개 구비 길 한쪽에 터를 다져 조성해놓은 피난구역으로 차를 몰아 들어갔다. 피난구역이란 혹시 생겨날지 모르는 고개 길 브레이크 파열 차량을 위하여 완만한 오르막길을 만들고 그 끝부분을 폐타이어로 마감해놓은 대피지역이었다.
‘어쩌면 꼭 침대처럼 만들어 놓았군.’
세모시 고쟁이에 눈부터 먼다고… 요정 치마폭 사건 이후로 며칠 동안 참았던 욕정이 슬슬 터져 나오던 중에 평평하게 다져놓은 피난구역을 보니 마치 모텔 방의 물침대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유호성은 그곳에 버젓이 차를 세우고 시트를 벌렁 눕힌 채로 누워 강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북한강을 벗하여 넓게 드리워진 호수 위로 희부연 겨울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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