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모두가 일등으로 살 수는 없다. 학교와 사회에선 일등을 강요하지만, 세상엔 일등 못지 않게 치열한 개미들이 묵묵히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한 때 봇물처럼 쏟아졌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비판의 대상이 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방송사들이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안방으로 불러들인 오디션 열풍은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안겼다. 일등 만능주의, 승자 독식 사회의 축소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던 탓이다. 똑같은 포맷으로 저마다 쟁쟁하다는 도전자들은 자신의 청춘을 걸고 정글 같은 오디션의 문을 두드린다. 도전자들은 어린 나이에 혹평과 호평을 두루두루 안으며 매회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수많은 경쟁자들과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좌절했다. 긴 인생에서 끝도 없이 겪어야할 생존경쟁의 예행연습을 전국민 앞에서 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4’는 매회 특출난 재능의 참가자들을 등장시키며 시청자를 열광케한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입에 침이라도 바른 듯 과한 칭찬을 쏟아낸다.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달고다닌 참가자들은 누구라도 스타가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굉장히 묘한 구조를 지닌다. 그들의 일상에서의 절정을 시청자가 다 알진 못하지만, 프로그램의 출연을 통해 도전자들은 자신의 생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지금 여기가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이후에는 어김없이 순위권 안에 들게 된 이름만이 기억에 남게 된다. 어차피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일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위로가 돼주는 순간이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K팝스타4’에선 예선, 콜라보 오디션 등을 거치며 박진영을 사로잡았던 이봉연의 등장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이봉연은 휘성의 ‘위드 미(With me)’를 직접 편곡해 심사위원 앞에 섰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예전같지 않았다.
양현석은 “생각보다 노래를 잘 한다“고 했지만 “잘하는데 색깔이 부족하다. 국으로 따지면 좀 싱겁다. 색깔만 입힌다면 건반도 좋고 노래실력도 좋다. 그부분만 채우면 좋은 가수가 될 확률이 많다”고 말했다. 유희열도 “프로듀서나 뮤지션으로서 이봉연 군은 좋다. 보컬에 대한 기대는 많이 안 된다. 기가 막히게 하는 게 아니라 건반보다 보컬에 집중하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개성과 자기색을 강조했던 ‘K팝스타4’에서 뉘앙스를 떠난 이 같은 지적은 도전자에겐 꽤 무거운 질책일 수도 있다.
박진영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트레이닝한 이봉연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같이 연습한 사람은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면서 “내가 보고 싶은 걸 봤다. 처음으로 자유로웠고 즐겁게 하는 모습을 오늘 봤다. 안 좋은 습관이 없기 때문에 감정을 더 싣는다면 색깔이 나올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박진영은 이봉연에게 “믿는다”고 말했다.
이봉연은 이날 ‘K팝스타4’ TOP 10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하지만 이봉연에게도, 무언가 꿈을 꾸다 고꾸라진 청춘들에게도 지금 이 시간은 끝이 아니다. 각박하고 피폐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구직단념자는 50만명을 육박하는 시대에 불쑥 찾아온 신뢰의 한 마디는 계속 살아가야할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최소한의 위로로 들렸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4’ 역시 일등은 아니다. 시청률은 13.1%(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기준), ‘슈퍼맨이 돌아왔다’(17.6%)에는 미치지 못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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