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개가수’, ‘개배우’ 등의 신조어가 범람하던 때가 있었다. 개그맨+가수, 개그맨+배우를 합성한 말이었다. 요즘 인기라는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도 영역을 허물고 방송인이 된 경우다. 방송가에선 이 같은 케이스는 흔하다. 아이돌 가수들은 드라마를 찍고, 과거의 인기가수들은 좁아진 가요계를 떠나 뮤지컬 무대로 활동폭을 넓혔다. 전직 아나운서들도 연기를 한다. 가수 출신으로 예능인의 자리에 우뚝 선 윤종신은 경계를 허물고 만능 엔터테이너가 된 사례다.
영역 파괴가 일상화되며 연예인들은 잠재된 끼를 다방면에서 발산한다. 그럴 때마다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텃세’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 시즌2’에선 배종옥이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배종옥의 경우 직업을 바꿔가며 전천후로 활동한 경우는 아니었으나, 시간을 걱거슬러 올라가니 방송사 공채 연기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텃세’의 추억이었다.
방송에서 배종옥은 “연기자 생활을 KBS에서 시작했는데 이후 MBC를 갔다. 그때만 해도 연기자가 방송국을 오가는 게 쉽지 않았다”며 “MBC를 갔더니 기수들끼리 똘똘 뭉쳐서 텃세가 심했다. 타 방송국에서 온 배우들한테 곁을 안 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 역시 낯을 가리는 성격이고 친화적이지 않아서 그땐 더 그랬다. MBC에 가서 너무 외로웠다.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엄청 굶었다”고 말했다.
공채 탤런트 시스템이 사라진 현재로선 쉽게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직업간의 경계를 허물며 왕복하는 연예인들의 생활에선 배종옥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례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세대 걸그룹 핑클 출신에서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은 옥주현은 “처음 시작할 당시 업계의 텃세를 느꼈다”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출연료 마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빚어지는 공연업계에 ‘이름값’으로 굴러들어온 연예인들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력까지 물음표라면 그 심경은 어떨까. 옥주현 역시 “연예인이 뮤지컬을 하는 걸 안 좋게 보시는 뮤지컬 배우들의 심정을 안다”며 “솔직히 뮤지컬을 하는 일부 연예인들이 연습을 너무 안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래 잘 하는 개그맨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수히 많은 음악 콩트를 통해 스타가 된 개그맨들은 음원 발매와 더불어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가요계의 텃세에 기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개그우먼 신보라는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로 인기를 모으고, ‘뮤직뱅크’ 무대에도 섰던 뛰어난 가창력을 지녔다. 하지만 신보라는 당시에 대해 KBS2 ‘해피투게더4’에 출연해 “코미디언이 가수들의 무대에 선 것이 미안했다”며 이른바 영역 침범을 둘러싼 ‘개가수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서 명언이 하나 나왔다. 프로그램의 MC 박미선의 “가수들도 예능 하는데 뭐가 미안하냐”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침에 한 동안 박미선의 해당 코멘트는 온라인을 통해 한동안 회자됐다. 네티즌은 이를 두고 이들간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를 꼬집기도 했다.
세상에 ‘밥그릇 싸움’ 만큼 치열한 건 없다. 다 먹고 살기 위해 온갖 부조리에 눈을 감으며 하루를 버티고 있는 똑같은 직업인일 뿐이다. 그 인생이 때론 비루하고 치졸해 보일지라도, 현실의 무게에 ‘거악’을 향한 분노는 모른 척할 지라도 우리에겐 걱정해야할 가족과 노후가 있기에 오늘도 내 밥그릇 앞에서 가장 잔인한 열사가 되고 만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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