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해묵 기자]작년 가을에 ‘소리의 마녀’라 불리는 가수 한영애씨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대학로 근처의 한 건물에 스튜디오 작업실과 기획사 사무실이 같이 있었습니다. 한영애씨를 만나기 전 매니저가 “지금 나무님이 사진 촬영 준비 때문에 메이크업을 하고 계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나무님?’ ‘소리의 마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무님’이라는 단어 한 마디에 한영애씨를 위해 준비해 온 컨셉들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소리의 마녀’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나무님‘이라니 혼란스럽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우선 사진 찍기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기 위해 그녀가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대략 20평의 지하실에 만들어진 스튜디오는 텅스텐 불빛들로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스튜디오 한 가운데서 메이크업을 받던 한영애씨가 소녀 같은 미소로 절 반깁니다.

한영애씨는 55년생으로 기자의 모친과 동갑입니다. 하지만 차분한 말투와 호기심 어린 행동들은 소녀 같았습니다. 기자의 요청에 의해 사진 촬영 중 간간히 불러주는 노래들은 카메라를 놓고 멍하니 듣게 만들만큼 감미로웠습니다. 소리의 마녀가 아닙니다. 그녀가 흥얼거리는 노래들은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내는 소리처럼 잔잔하게 마음 속으로 스며듭니다. 나무라는 말이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군요. 그저 가벼운 기타반주에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 뿐인데 말이죠. 한참을 멍하니 음악을 듣다가 촬영을 끝냈습니다.

며칠 뒤 신문지면에 그녀의 기사가 나오고 취재기자를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곧 앨범이 나올텐데 앨범 자켓 사진을 찍어달라구요. 지난 1999년 정규 5집 ‘난다’ 이후 무려 15년만에 신보를 내는 거라던데,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한영애씨가 직접 원한 거라니... 그래서 앨범 디자이너들과 컨셉회의를 하고 앨범촬영을 했습니다. 하루종일 이어진 촬영에 몸은 지쳐갔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앨범이 나왔습니다. 나무님(?)의 싸인이 담긴 평생소장용 앨범. 볼 때마다 잔잔히 미소 짓게 합니다.

글/사진 박해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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