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걸그룹 AOA의 리더 지민의 무게는 ‘아이돌 꼬리표’였다. 기 센 여성 래퍼들 사이에서 말랑말랑한 걸그룹 내 래퍼로 프로그램에 도전한 지민은 사실 이 방송 내내 눈물만 흘렸다. 케이블 채널 Mnet ‘언프리티 랩스타’에서다.
지난 19일 방송된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지민은 치타를 상대로 세미파이널 무대를 가졌다. 이날의 주제는 ‘리얼 미(Real Me)’. 자신의 이야기로 랩을 만들어 일대일 대결을 펴는 최종 무대를 향한 관문이었다. 프로그램이 첫 방송되던 당시부터 지민은 다소 주눅이 든 것처럼 보였다. 치열하게 공격해도 모자를 판에 ‘센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위축되기 일쑤였다. 그나마 무대에선 당당해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자신조차 큰 무게로 인식하는 ‘아이돌 꼬리표’가 지민의 자신감도 도려냈다. AOA의 찬미는 “보여주기도 전에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느낌이었다”며 눈물까지 보였다.
이날 지민의 무대(‘Puss’)는 꽤 성공적이었다. 키썸은 “진짜 래퍼가 되지 않았나”고, 졸리브이는 “여태껏 했던 랩 중 가장 강한 랩을 한 것 같다”, 육지담은 “귀여우면서도 약간 섹시한 것도 있다”고 칭찬했다. 물론 좋은 결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제시는 “뮤직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며 자체평가에서 지민을 5위로 꼽았다. 사실 지민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데뷔 4년 만에 정상에 오른 걸그룹 AOA의 리더로, 굳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가요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전하기에 큰 무리는 없어보이는 환경이었다. Mnet의 한동철 국장 역시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하며 “지민은 아이돌이고, 이미 잘 되고 있는 사람이라 섭외 당시 힘들었다”고 했고, 지민 역시 “처음에는 잘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방송의 출연은 지민에게도 자극제였다. 지난달 26일 진행된 버벌진트 프로듀싱에 2am 임슬옹이 피처링한 ‘시작이 좋아2015’의 주인공을 가리는 대결에서 지민은 타이미를 걲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민으로선 AOA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솔로곡이었다. 당시 지민은 “감격스러웠다. 많은 것들이 생각났는데 내가 혼자 나와서 뭔가 보여줬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래퍼 지민으로서 더 많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더 욕심이 난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쓰나미처럼 쏟아지며 가요계를 점령한지 이미 수년째다. 3분 짜리 노래를 10여명이 나눠부르니 이들의 가창력은 가늠조차 어렵다. 무대에선 음악성보다 비주얼에 치중한다. 걸그룹의 경우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섹시한 안무만 선보이니, 노래는 들리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대중이 그들에게 가지는 이중잣대나 편견은 너무도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EXID가 차트 역주행을 하며 대세 걸그룹으로 떠오른 것은 하니의 직캠 영상 덕이었으니, 이 걸그룹의 메인 보컬 솔지의 가창력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다. 솔지가 지난 설 연휴 방송됐던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평가단과 시청자의 귀를 의심케하는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선보여 내내 화제가 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민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엔 AOA의 리더이자, 걸그룹에서 랩을 하는 멤버일 뿐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걸그룹에서 랩을 하는 멤버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을까. 섹시코드가 됐든, 요정컨셉이 됐든 몇 분짜리 노래에서 그저 양념처럼 삽입한 랩 파트가 한 멤버의 진짜 실력을 다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프로그램을 통해 지민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으며, 개인적인 성장의 발판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또 기 센 여자 래퍼들 틈에서 아이돌 래퍼의 실력을 보여주고, 처음으로 평가받으며 인정받는 시간이 됐다. 경쟁자들 틈에서의 고군분투는 독한 혀들도 알아봤다. 동시간대 방송된 JTBC ‘썰전’에서 허지웅은 “AOA 지민의 광팬이 됐다”고, 강용석은 “‘학교다녀오겠습니다’에서 공연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지민 양이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하는 순간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며 “아이돌인데 저렇게 랩을 잘하나 했는데 그런 평가가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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