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인간의 역사가 곧 전쟁의 역사라는 명제는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전쟁과 군대로부터 시작돼 발전된 사물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미국 펜타곤이 개발한 아르파넷(ARPAnet)에서 출발한 인터넷, 그리고 자동차 네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등에 활용되고 있는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꼽을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인터넷과 GPS보다 우리 생활에 더 밀접한 것들도 있다. 전쟁에 나선 군인들에게 영양공급과 사기진작을 위해 개발됐지만 이제는 민간에 널리 퍼진 전투식량이 일례다.
얇게 썬 고기와 채소, 어묵 등을 육수에 데쳐 먹는 샤브샤브는 전투식량으로 출발해 민간으로 확산된 대표적인 예다.
샤브샤브는 물에서 꺼낼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하는 일본어 의성어로 ‘첨벙첨벙’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샤브샤브의 기원은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기병대가 투구에 물을 끓여 말고기나 양고기와 함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넣어 데쳐 먹은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 몽골에서는 샤브샤브와 같은 형태의 음식은 찾기 어렵다고 한다.
육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유 역시 칭기즈칸의 몽골기병대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에 따르면, 13세기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는 분유로 여겨지는 식품이 이미 등장한다.
동방견문록에는 몽골 사람들이 커다란 솥에 우유를 넣고 끓이다 우유가 굳지 않도록 국자로 유지방을 떠내 별도의 그릇에 담아 버터를 만들고, 다시 밀가루처럼 반죽을 만들어 햇빛에 말려 분유 형태로 만드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은 갓난아기가 먹는 분유는 원래 건장한 군인들을 위한 음식이었던 셈이다.
한국이 세계적인 ‘위엄’을 떨치고 있는 커피믹스의 뿌리도 전투식량이다.
커피믹스의 시초가 등장한 배경은 1861년 시작된 미국 남북전쟁이었다. 남북전쟁은 장병들에게 커피를 제공한 사실상 첫 전쟁이라 할 수 있는데, 원두를 갈아 커피가루를 내리고 물에 끓여야하는 등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북군에서 커피믹스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국방부인 전쟁부에 커피담당 부서를 따로 설치할 만큼 커피를 전쟁물자로서 대단히 중시했다.
건빵과 별사탕, 설탕으로 싼 초콜릿 등은 각각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스페인 내전 시기에 만들어진 전투식량이 민간으로 퍼진 경우다.
육군은 최근 현재 4종류 11개 식단인 전투식량을 2종류로 줄이는 대신 식단을 36개로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뜨거운 물에 데워 먹는 ‘I형’(쇠고기ㆍ김치ㆍ햄볶음밥)과 물을 부어 먹는 ‘II형’(김치ㆍ야채비빔밥ㆍ잡채밥), 특전부대원들을 위한 ‘특전형’, ‘즉각취식형’의 4종류를 전투식량 24개 유형, 특전식량 12개 유형으로 다양화한다는 내용이다.
또 이미 민간업체에서 개발돼 캠핑, 등산, 낚시 등 레저생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웃도어형’ 식품을 구매ㆍ활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기존의 전투식량이 민간으로 확산된 사례가 ‘스핀오프’(spin-off)였다면, 아웃도어형 식품의 전투식량 활용은 민간기술을 군사분야에 적용하는 ‘스핀온’(spin-on)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육군은 지난달 28일 관련 군ㆍ민간 전문가와 유관기관 관계자, 관련업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투식량 혁신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장병들에게 질 좋고 경제적인 전투식량 공급하기 위해 전투식량 운영개념을 혁신하는 방안을 중점 논의하기도 했다.
모쪼록 군 당국의 시도가 좋은 결실로 이어져 장병들의 병영생활 속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씻어주길 기대해본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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