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홍석천이다.”

“정말? 진짜 홍석천이네.”

연예인 판정단도, 방청석의 일반인 판정단도 뒤집어졌다. 가면을 벗었을때 나타난 얼굴. 다름아닌 홍석천이다.

중저음의 노래가 깔렸을때, 홍석천이라고 생각한 이는 없었다. 친구라는 김구라도, 같이 밥을 먹었다는 홍진영도 가면 뒤 얼굴이 공개되자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안방 TV를 시청하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요일 오후, 어김없이 나를 텔레비전 앞으로 이끄는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지난 17일 오후 홍석천이 가져다준 반전은 내겐 일종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철물점 김사장님’으로 가면을 쓰고 출연한 홍석천은 얼굴 공개뒤 “편견에 부딪혀서 좌절한 사람이 많은데, 겉모습이나 기존의 모습 말고 진실된 모습을 알려고 노력하면 새로운 걸 볼 수 있다. 그게 복면가왕의 매력”이라고 했다.

내가 복면가왕의 팬이 된 것은 홍석천의 멘트와 관련이 크다. “계급장을 떼고 목소리 하나로 승부한다”는 프로그램의 철학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홍석천 멘트가 내 가슴을 때린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적어도 내가 갖고 있었던 편견의 크기가 작지 않았음을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데 있다. 홍석천하면 나로서도 드는 생각은 ‘여성스러움’이었다. 여성의 톤, 여성의 몸짓 등이 내 뇌리를 지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아마 홍석천이 그 특유의 모습을 갖고 노래를 했다면, 그 노래가 감성을 두드릴만큼의 진폭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홍석천은 아마 그래서 ‘편견’이라는 말을 했을게다. 겉의 모습이 아닌, 내면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일종의 항변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복면가왕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교훈이 된다. 학력이, 재산이, 집안이 그 사람 내면보다도 중요시되는 세상, 외모 하나가 경쟁력이 되는 더러운 세상. 그런 세상을 복면가왕은 꾸짖는다. 경연서 탈락한 경력이 빵빵한(?) 가수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고 했다. 그동안 브랜드와 경력ㆍ유명세, 이같은 허명으로 살아왔음을 깨닫게 됐으며 이로 인해 초심(初心)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자기고백인 셈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복면’ 속에서 살고 있다. 스펙이라는 복면, 외모라는 복면. 그 복면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해 온 것이다.

복면과 내면의 진실에 대한 터치(?)는 어제 오늘의 이슈는 아니다. 유명한 커플 주선 프로그램이었던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블라인드 만남을 통해 목소리와 입담으로 처음에 상대방을 골랐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영화 복면달호에서 트로트를 불러제치던 차태현의 고민도 복면 속에 담겨 있다.

복면가왕은 이처럼 오늘날 겉모습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 사람의 내면은 알려고 하지 않은채, 겉모습에만 매달려 무시는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세상살이 교훈을 준 복면가왕,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너 참 고맙고,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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