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되면서 모임ㆍ식사 예약 너도나도 취소

-대한민국, 메르스로 인해 ‘캔슬 신드롬’에 빠져

-평소 북적이던 일부 대형마트, 식당가는 썰렁함 마저

-일부 지역은 경기불황때의 늪 연상케 하는 곳도

-“아이가 보채긴 하지만 집이 가장 안전” 죄다 방콕族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1. 올해로 고등학교 졸업 30년이 되는 서장석(50) 씨. 그와 동창생 몇명은 졸업 30년을 맞아 이달 대규모 동창모임을 추진했다. 오겠다고 한 이가 많아 잘만하면 즐거운 추억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새 동창들이 하나둘씩 합류 대열에서 이탈했다. “메르스 난리인데, 모임 되겠나? 수십명이 모일텐데…. 다음에 참석할게”라고 하면서. 서 씨는 할수없이 모임을 취소키로 했다. 30년만의 동창회에 대한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친구들에겐 “긴급공지, 메르스 때문에 동창모임 취소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2. 이정희(55ㆍ여) 씨 역시 그렇다. 이 씨에겐 소중한 친구가 4명 있는데, 매년 5쌍 부부가 모여 1박2일로 여행을 가곤 한다. 6월5~6일은 이 씨가 진작부터 잡아놓은 디데이(D-Day)였다. 모처럼 부부끼리 모여 정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메르스 때문에 모두들 부담된다며 걱정의 소리를 늘어놨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하루이틀전 여행을 취소했다. 비용손실은 만만치 않았다. 아쉬웠지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7일에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포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전체 사회적 분위기가 ‘캔슬(Cancelㆍ취소) 증후군’에 빠지고 있다. 메르스 의심자가 골프장에 다녀갔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큰 모임에 참석했고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격리 조치되고 있다는 등의 SNS 소문 등이 퍼지면서 예정된 약속이나 모임을 취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큰 행사에서의 모임은 물론 가족단위의 모임, 소규모 친구끼리의 모임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분위기다.

회사에서도 가급적 모임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하달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과 현대ㆍ기아차는 이달 열릴 예정이던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를 잠정 연기키로 했고, 대부분 기업이나 학회 등도 예정된 세미나를 취소하는 등 메르스 예방책을 실시하고 있다. 직장인에서 주말 시민으로 돌아온 대부분 이들이 주말 나들이를 꺼리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수원에 사는 하대충(42ㆍ남) 씨는 “지난주 회사에서 가급적이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행사 참석을 자제하라는 공문이 전달됐다”며 “이런 시기에는 자제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약 보름간의 개인 약속 일정을 취소하거나 약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개인 약속, 단체 약속 등이 대거 취소되다보니 주말 대한민국의 풍경은 갑자기 싸늘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경기불황의 늪에 있던 때와 비슷한 양상마저 보이는 곳도 즐비했다.

평소 북적이던 일부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주차장은 한산한 기운마저 감돌았고, 금요일 밤부터 주말까지 저녁시간이면 손님들이 넘치던 동네 유명 식당도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맛집으로 유명한 이촌동 P식당 사장은 “평소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저녁에 보통 5가족 이상의 예약이 있는데, 주말을 앞두고 반 정도가 예약을 취소하더라”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장소를 나부터 피하고 싶기에 이해는 가지만, 우리로선 앞으로 한동안 장사 생각을 하면 걱정이 된다”고 했다.

메르스 확산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SNS를 타고 크게 번지면서 주말 시민들의 불안감은 정점에 달하고 있다. 주말 공원이나 유통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가급적 피하고 스스로 ‘방콕족(族)’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주부 김정애(35ㆍ여) 씨는 “아이가 자꾸 나가자고 보챘는데, 달래면서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서정석(42ㆍ회사원) 씨는 “야구를 평소 좋아해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후 꼭 주말에는 경기장을 찾곤 했는데, 이번 주말에는 가지 않았다”며 “메르스가 장기화할지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고,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메르스 사태는 도심에도 썰렁함을 선물했다. 서울시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따라 7일 세종로와 강변북로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하이서울 자전거대행진 행사를 취소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희망나눔장터도 휴장했다.

이렇듯 메르스는 대한민국 주말을 숨 죽이게 만들고 있다. 건강한 경제 역시 한동안 코를 박고 엎드려 있어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