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이른바 ‘엘리트 판사’들이 대거 보직을 맡는다는 대법원과 사법부의 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상고법원이 법무부, 정치권, 법조계, 법학계 4자 협공 속에 난항을 겪고 있다.

대법원이 표방하는대로 국민에게 신속한 재판을 보장하려는 제도라면, 상고법원 추진안 논의 과정에서 국민이 참여해야 하지만, 시민 대표들이 각종 공청회나 입법화 과정에서 배제돼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의원 168명이 지난해 12월 판사 출신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 대표 발의로 제출한 상고법원 설치안은 사법부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적을 받는 사안들은 대법관 증원 보다는 상고법원에 매달리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속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불거진다.

즉 사법부 수뇌부가 ‘엘리트 판사 순혈주의’, ‘꽃 보직 나눠먹기’ 관행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과 대법관 구성의 ‘권위적 순혈주의’를 유지한 채 상고법원이라는 ‘변칙적 3심급 기관’을 두려는 뜻이 비슷한 맥락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속내는 ▷경력 판사 임용 등 과정에서 검사, 변호사 등의 비율을 늘리는 등 다양화를 도모하지 않은 점, ▷대법관 후보 추천과정에서 판사 출신 일색인 점, ▷로스출 출신 법원 로클럭(재판연구원)을 거쳐 로펌이나 국선변호인으로 있던 새내기 변호사들을 신임 경력판사로 임명해 ‘입도선매’ 방식의 현대판 음서제 우려를 낳고 로펌의 ‘후관예우’를 방조한다고 지적 받은 점 등도 이같은 맥락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죄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 스스로 공판중심주의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 법정진술보다는 검찰진술조서를 선택, 지난 20일 한 전 총리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야당 내 기존 우군 조차 등을 돌린 상황이다. 최근 잇달은 판결에서 대법원이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도 야당쪽 우군의 이반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21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열고 상고법원 신설 법안에 대해 논의 했지만 여야의 시각차, 의원들 간의 방법론 차이 만을 확인한 채 결론을 내지 못했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은 “이번 판결이 나온 배경 중 하나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결여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것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정치권 보혁의 대결로만 이어진다면 상고법원이 국회에서 억지로 관철될 수도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산 넘어 산’이다.

행정부 역시 상고법원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이다. 법무부는 최근 대법관 구성의 문제점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역대 대법관 구성 자료를 내놓고 상고법원 추진안에 대해 우회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했다.

법무부가 역대 대법관의 출신학교와 경력, 성별 전수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법관’ 일색으로는 소수자와 인권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놨다. 142명중 서울대 출신은 102명(71.8%), 법관출신은 124명(87.3%)으로 압도적이었다.

자료는 미국 연방대법관 9명 가운데 검사 출신이 4명, 여성이 3명이고 일본 최고재판관 15명 가운데 9명이 변호사와 관련, 검사 출신이라는 점 등도 제시하고 있다. 이 자료는 법무부의 ‘상고법원 반대’ 기조를 반영한다.

검찰의 한 간부는 “국민과 행정,입법,사법부 등 3부의 세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상고법원 법관들을 판단을 국민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느냐”면서 “대법관을 몇 명 증원하면 될 것을 3심재판관 수십명을 늘리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나 법조 3륜의 균형 면에서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고법원이 생길 경우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 상고법원 설치안 성안 및 추진 과정에서 행정부 파트너인 법무부를 배제한 채 판사 출신 국회의원을 골라 의원입법으로 추진한 점 등도 법무부-검찰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앞서 법학자 100명은 지난달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권위 향상만을 고려한 제도이며 위헌 여부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해 학계의 반대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대한변협은 상고법원 반대 입장을 천명한 바 있으나 지방변호사회 별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직 법관들이 자전거 캠페인 등 방식으로 거리로 나서 상고법원을 홍보하는 모양새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저게 뭔데, 판사들이 저러나”라는 반응을 보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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