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망가지고 망가지다 조금 못생겨졌다. 연예인들이 외모로 적나라하게 평가받는 브라운관에서 여배우들은 ‘꽃미모’를 내려놨다. 급기야 “너무 못생겨서 채널이 돌아갈까”(황정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반응이 다르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외모 대신 연기에 주목했다.
배우 황정음은 최근 시작한 수목드라마 MBC ‘그녀는 예뻤다’를 통해 ‘킬미, 힐미’(MBC)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안방으로 돌아왔다. 드라마가 내세운 황정음의 수식어는 ‘역변’의 아이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뻐 모두의 첫사랑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외모도 엉망이 됐고, 스펙도 갖추지 못했다. 주근깨 투성이에 구제불능 곱슬머리, 패션센스도 빵점이다.
황정음의 경우 ‘비밀’(KBS2) 이후 연기력이 일취월장하며 과거 ‘발연기’ 논란은 완전히 씻어낸 배우지만 이번에 또 다른 면이 보이게 됐다. 배우 황정음의 강점이 드라마에서 고스란히 발산된다. 삼포세대의 고단함을 건드리면서도 애써 주눅들지 않고 밝게 견뎌야하는 사람, 세상의 시선에 휘청이다가도 자기 할 말을 똑부러지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술에 취하면 또 대책없이 주정을 부린다. 현실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의 또 다른 모습이다. 황정음은 자신의 실제 얼굴을 드라마에서 완벽히 감춘 채 또래의 청춘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못생긴’ 외모로 오랜 시간 사랑받은 여배우들은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tvN)의 김현숙 라미란이다.
2007년 첫 방송된 ‘막돼먹은 영애씨’는 노처녀 이영애의 고단한 직장생활을 김현숙을 통해 2030 여성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드라마다. 그리 예쁘지도 않고 다이어트를 생각하지만 먹고 또 먹어 ‘돼지’라고 직장상사로부터 언어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영애는 굴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신스틸러 라미란은 쪽진 머리에 빨간 립스틱, 촌스러운 의상으로 한껏 꾸미고 등장하지만 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행동 하나 하나는 찌질함의 대명사다. 쿠폰 한 장에 달달 떨고, 그 쿠폰을 선물로 주는 것을 생색내는 캐릭터다. 줬다 뺐는 일도 수차례다.
이 드라마는 놀랍게도 여배우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번 시즌에 앞서 시작된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등장한 김현숙 라미란의 모습에 현장을 찾았던 기자들마저 감탄했다. “정말 예뻐졌다”, “예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드라마는 여전했다. 그 흔한 반사판은 물론이거니와 배우의 실제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찍어내는 제작진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났다.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뚱뚱하고 못생긴 노처녀와 진상 직장인이다. 깊어진 주름과 어두운 눈가까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현실을 연기한다.
브라운관에선 여배우들이 망가지며 인기를 얻은 사례가 많았다. 배우 고아라가 대표적이다. ‘응답하라 1994’를 통해 10년 연기인생을 재평가받은 고아라는 ‘예쁜 척하지 않는 연기가 더 예뻐보인’ 대표 케이스다. 고아라는 드라마에서 구수한 사투리 연기를 바탕으로 사정없이 흐트러진다.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에 술만 마시면 옆사람을 깨무는 주사를 지닌 ‘미친개’다. 화장기도 없는 얼굴, 일부러 살을 찌우고 머리는 폭탄을 맞은듯 부스스하다. 당시 드라마에서 고아라는 연기에만 몰입하겠다는 결의마저 엿보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신비주의가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대중은 이웃 같은 친근한 모습을 선호한다”며 “예능가에서 관찰예능이 트렌드로 자리하고 사생활을 노출하며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처럼 드라마에서도 예쁜 척하는 연기보다는 의외의 모습이라 여길 만큼 망가지는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하 평론가는 때문에 “배우들이 드라마 안에서 많이 망가지는 연기를 보일수록 열정적으로 드라마에 헌신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모습이 그렇지 않을지라도 캐릭터로 인해 소탈하고 솔직하다는 이미지가 비쳐져 보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며 “같은 여성들에겐 판타지를 깨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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