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쳐도 도전정신 가질때 성공의 기쁨 맛봐”

대전시 서구 계룡로에 있는 건설업체 금성백조주택 사옥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남 보기에는 어리석을지 몰라도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뜻하는 바를 이룬다는 뜻. 반세기 이상을 성공 건설인으로, 또 사회공헌 ‘큰손’으로 우직한 삶을 살아오고 있는 정성욱(69) 금성백조주택 회장의 삶 그 자체다.

▶쓰디쓴 시행착오, 성공 밑거름= 정 회장이 본격적으로 주택건설업에 뛰어 든 것은 35살 되던 해인 1981년. 당시 직원은 4명뿐이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지만 정 회장에게 있어 사업 초기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때마다 스스로를 달래며 특유의 집념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1986년 100세대 아파트를 지어 분양시장에 내놓았는데 고작 3세대만 나갔어요. 품질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잘 짓기만 하면 잘 팔릴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결국 세상 물정 모르고 덤빈 결과치고는 너무나 가혹했지요. 어떻게 지탱해 온 목숨인데.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스스로 세상과 이별하려고 맘까지 먹을 정도였지요. 무엇보다 자괴감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버거웠어요.” 모진 세월을 회상하는 정 회장은 붉어지는 눈시울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평생을 새벽 4시에 일어나 일간지 8개를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전형적인 새벽형 성공 기업인 정성욱 금성백조주택회장. 10대 시절 현장에서 익힌 목공업 노
하우를 바탕으로 명품 아파트 건설에 열정을 쏟고 있는 정 회장이 도전정신을 강조하며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평생을 새벽 4시에 일어나 일간지 8개를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전형적인 새벽형 성공 기업인 정성욱 금성백조주택회장. 10대 시절 현장에서 익힌 목공업 노 하우를 바탕으로 명품 아파트 건설에 열정을 쏟고 있는 정 회장이 도전정신을 강조하며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전쟁 와중에 병환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고 홀로 4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를 생각하니 술에 의지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겠다고 다시 이를 악물었지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남은 아파트를 팔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직접 거리로 나간 겁니다.”

그 길로 정 회장은 트럭에 홍보전단을 싣고 직접 마이크로 아파트 홍보에 나섰다. 현금이 없는 이들에게는 대신 땅을 받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팔기도 했다. 결국 미분양 96세대를 다 팔면서 회사는 안정을 되찾았다.

정 회장의 인간승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실패를 통해 주택건설업에서 영업과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쓰디쓴 실패와 실수의 경험은 오롯이 몇 년 뒤 성공의 밑거름이 돼 돌아왔다.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부동산 붐이 거세게 불어 닥친 1980대 후반, 당시 금성백조가 분양했던 182세대 아파트가 187대 1이라는 ‘대박’을 안긴 것이다. 아파트 분양 경쟁 신기록을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매출 총액이 약 57억원이었는데 분양을 희망하는 신청금만 200억원 가까이 들어와 신바람 났지요. 신청서는 몇 번이나 재 인쇄 들어가도 부족해 신청서마저도 웃돈이 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정 회장은 첫 번째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 엄청난 희열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건설인으로 살아 오면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지금도 매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고 한다. 한 순간 하나의 잘못된 판단이 나와 가족, 회사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지 100가지 조건 따져= 정 회장은 타고난 건설인이다. 아파트 입지를 선정할 때면 모든 신경을 총동원할 정도로 신중해진다. 좋은 집터를 얻으려면 3대(三代)가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좋은 입지를 선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입지를 선정할 때 100여 가지 항목을 분석해 지을 아파트의 10년, 20년을 내다봅니다. 무엇보다 입주자가 터의 기운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입지 선정의 최우선 조건인 겁니다. 대충대충 짓다보니 금이 쩍쩍 가고 물이 새고 그러는 거지요.”

그래서일까. 정 회장의 아파트는 ‘삶이 아름다운 아파트’라는 의미를 담은 ‘예미지(藝美智)’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지낼수록 편안함이 느껴지는 아파트를 지으려고 전 직원이 애 씁니다. 단지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도록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주민 공동시설의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정성을 쏟으면 아파트 곳곳에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되는 법입니다.”

정 회장은 한 해에 두어 개 현장, 2000가구 안팎을 내놓는다. 무리하게 몸집 불리기보다 산을 옮기듯 한 걸음씩 나가자는 게 그특유의 분양 스타일이다. 물론 재무구조와 수익성에 대한 기업경영분석 지표도 꼼꼼히 챙긴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키우며 임직원이 합심 단결한 결과임을 확신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대형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금성백조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회공헌, 꾸준한 게 더 중요= 정 회장은 지역사회에서 ‘마당발’로도 통한다. 보유한 직함은 열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랄 정도다. 대전 상공회의소 상임의원, 한국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발기인, 대전시개발위원회위원장, 한국자유총연맹 대전시회장,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대전충남지부 후원연합회장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렇듯 정 회장은 사업만큼이나 사회공헌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고객들이 베푼 사랑을 돌려준다는 신념아래 이익이발생하면 당연히 사회와 함께 나눠야 한다고 여겨 왔다는 정 회장은 크게 다섯 가지 활동으로 구분해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스포츠)지원을 통한 ‘문화예술나눔이’, 국가유공자 가옥을 무료로 보수해 주는 ‘주거개선지킴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주는 ‘희망교육배움지원’, 공익사업 및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한 ‘행복드림공익활동’, 소외계층지원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사업인 ‘큰사랑복지사업’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주거개선지킴이사업과 큰사랑복지사업을 꼽는다. 주거개선지킴이사업은 국가유공자 가옥을 무료로 보수해 주는 사업으로 1994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22주년을 맞았다. 지난 22년 간 총 43세대를 지원하며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오고 있다. 우리 사회 주변에 흔한 일과성 생색내기 사회공헌과는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는 게 정 회장 주변의 설명이다.

큰사랑복지사업은 예미지사랑나눔봉사단이 직접 참여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활동으로 1981년 회사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34년간 대전지역 3개 복지시설(성애요양원, 평화의마을 아동복지센터, 성심보육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복지만두레, 사랑의 김장 담그기, 사랑의 연탄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랑나눔봉사단에는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요. 사랑나눔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 모두가 끈끈한 유대를 유지하면서 긍정적인 금성백조 특유의 사내 문화를 창조해 나가고있어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갈 겁니다. 사실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공헌보다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을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쭉 유지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모든 것은 스스로 마음먹기 나름= 정 회장은 임직원들과 회의 할 때 ‘산으로 간다’는 말을 듣는데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가슴 속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제가 살아온 생생한 경험담을 한 번이라도 더 들려주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다 옳고 맞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직원 모두가 자식 같아 보여서 인생 선배로 조언하고 충고해 주려는 거지요. 임직원이 한데 힘을 모으고 보태가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잘 돼야 회사도 순탄하게 성장할 수 있지 않습니까.”

소탈하지만 힘 있는 웃음을 자주 보이는 정 회장은 통큰 기부로 지역사회에 소문이 자자하다. 충남대 6억원, 한밭대 2억원, 한남대와 배재대 1억원씩 등 ‘억소리’나는 거액을 대학 발전기금으로 쾌척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해 왔다. KAIST, 성균관대, 우송대, 대전고, 서대전고, 용산고, 한밭초, 회덕초, 용산초, 국제학교 등 대학은 물론 초ㆍ중ㆍ고등학교에까지 크고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춘추전국시대의 관자(管子)는 하나를 심어서 하나를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하나를 심어서 열을 거두는 것은 나무이고, 하나를 심어 백을 거두는 것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학교, 기업, 기관 어느 것 할 것 없이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이런 걸 앞장서 실천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전기금을 내놓게 된 겁니다.”

정 회장과의 대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 일자리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지역인재와 지역기업의 상생과 산학연의 협업이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채용의 문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지역인재가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빠져 나간 때문인지 지역사회의 우수한 중견기업들은 오히려 인재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학교가 상생하고 이를 통해서 기업인과 지역 인재들이 윈-윈하는 사이클을 유기적으로 유지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업 성공 못지않게 인재를 키우고 사회를 보듬는 것도 기업인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갖고 또 실천하는 일입니다.”

힘들어 하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부탁하자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성장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 나오기에 고통을 인내하고 끈기를 가져야 합니다. 힘들고 지쳐도 도전이라는 강인한 정신을 가질 때 성공의 기쁨도 맛보게 됩니다.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 파이팅 입니다.”

정리=배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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