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이리 가문서 석유 통제하고중동 이슬람 종주국 입지도 다져

사우디를 건국한 것은 이븐 사우드 국왕이지만, 이른바 ‘수다이리-사우디’ 왕조의 문을 열고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이는 파드<사진> 국왕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자랑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칼리드 국왕이 1-2차 석유파동을 통해 석유패권을 다졌지만,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 때부터 석유를 둘러싼 모든 외교업무를 담당했던 이는 다름 아닌 파드 국왕이었다.

1962년에야 내무부 장관에 올랐지만, 이미 사우디의 외교는 그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1963년에는 친동생인 술탄이 국방장관을 맡으며 수다이리는 사우디의 안팎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헨리 키신저 전 외무부 장관은 일찌감치 회고록에서 파드 왕자를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

제임스 카리그 전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1979~84년)도 미 공영방송 PBS 다큐멘터리에서 “파이잘 국왕과 정책 문제를 논하면 ‘동생 파드와 논의하라’”고 말했었다고 증언했다.

파드 국왕이 힘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업적도 컸다. 파드 국왕은 왕세자이자 총리를 겸할 당시 칼리드 왕을 대신해 중동전쟁을 주도했다.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과 협력해 걸프 협력기구(GCC)와 이슬람 컨퍼런스 기구(OIC)를 설립한 것 역시 파드 왕세자였다.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의 이슬람 종주국 입지를 공고히 한 것은 파드 국왕의 공이다.

내정에서 파드 국왕의 가장 큰 공은 석유를 수다이리 가문의 통제 아래로 가져온 것이다.

사우디 석유정책 의사결정기구인 석유위원회는 업계 관계자와 왕족, 국왕으로 구성된다. 애초부터 석유부는 사우디의 종교지도자 와하브의 후손인 알 앗 셰이크 가문이 파이잘 국왕의 후원으로 장악하고 있다. 파이잘 국왕은 세이크 가문의 수장이다. 석유부 1대 장관인 타키리도 알 앗 셰이크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파드 국왕은 1986년 석유장관이던 셰이크 가문의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를 경질한다. 외교의 달인인 파드 국왕은 야마니를 경질 시킨 이후 중재자로서의 지휘를 회복하고 유가를 다시 상승시켰다.

결국 파드 국왕은 셰이크 가문의 석유권력을 빼앗음으로서 내정, 외교, 국방, 석유 등을 모두 손에 쥘 수 이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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