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밥 가난’가슴에 품고 ‘신발보다 싼 타이어’로 年 3000억 매출신화 국내 최초 ‘CEO사관학교’ 설립 한발 다가선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

“이루고 싶은 꿈을 생각하면 언제나 설렙니다.”

‘앗 신발보다 싼 타이어’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내건 타이어뱅크로 타이어 유통산업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김정규(50) 회장. 그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젊은 시절 내내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이제 그는 전국 주요 도시에 365개 점포를 거느린 연간 매출 3000억원대의 중견기업가로 변신해 있지만, 그의 심장은 또 다른 꿈을 위해 뛰고 있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뛰는 가슴을 지닌 김 회장의 꿈은 이제 조금 달라졌다.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 과거 어릴 적 꿈이었다면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제대로 키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의 꿈이 현실로 나타날 날도 멀지 않다.

▶가장 큰 죄는 가난이다=김 회장은 초등학생 시절 영양결핍으로 쓰려져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가장 큰 죄는 가난’이라는 생각을 갖고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처럼 돈 많이 버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것이 죽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생사를 헤맨 던 적이 있습니다. 죽음을 어렴풋이 경험한 이후 가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취직하는 것보다는 사업을 해서 부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김 회장은 바닷가인 충남 서천 출신이지만 생선을 먹지 않는다. 이유는 가난한 어린시절 기억 때문이다.

“어머니가 반찬은 없고 소금은 먹어야 생존한다고 생각하셔서 도시락에 가장 싼 갯벌 소금을 뿌려 밥을 싸주셨죠. 그게 ‘소금밥’이라는 거였어요. 이 때문에 아이들이 제 도시락에서 갯벌 비린내가 난다고 저를 피하는 바람에 도시락을 혼자 먹곤 했죠.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비린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생선을 안 먹어요. 허허허.”

김 회장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학비를 위해 시작한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통해 더욱 더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다졌다.

“당시 배달하면서 대기업 CEO들이 쓴 신문 칼럼을 빼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저도 잘 살고 나라도 잘 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을 먹어 살리는 사업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죠.”

이런 김 회장의 인생관은 그의 남다른 명함에 그대로 나타난다.

김 회장의 명함은 일반적인 명함보다 2배 크다. 앞장에는 본인의 이름 앞에 ‘성공을 만드는 사람’으로 소개한 후 ‘성공과 부자의 길’이라는 글귀로 나머지 3면을 빼곡히 채웠다. 이 글귀는 김 회장이 역사적 인물 연구과 기업경영을 통해 얻은 20가지 지침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이유가 있고,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공과 부자의 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 부자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명함에 적어 놓았습니다.”

▶탁월한 승부사의 기질로 부자의 꿈을 이루다=김 회장은 학비와 기숙사가 무료인 기계공고를 거쳐 1984년 충남대 경영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199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타이어뱅크의 재원을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마련할 정도로 김 회장의 수완은 남달랐다.

우선, 그는 운전면허 소유자가 흔하지 않았던 80년대 대학 교정에서 운전면허학원의 3분의 1정도인 비용을 받고 면허취득할 때까지 책임지는 교습을 통해 돈을 벌었다.

또 대학생 과외를 금지시켰던 시절에도 불구, 과외 수요자와 공급자를 이어주는 사업으로 타이어뱅크를 설립하는 종잣돈을 마련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거예요. 운전면허 교습이나 과외를 사업화한 거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하면서 사업화했죠 그 돈으로 지금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김 회장은 1991년 2월 대학 졸업 이후 3개월 만에 대전을 본사로 둔 타이어 유통 전문점인 타이어뱅크를 설립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꽃다운 스물여섯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발보다 싼 타이어’라는 소비자의 마음을 확 당기는 광고 문구를 통해 타이어 유통의 혁명을 일으켰다. 제조사-지점-총판-대리점-카센터-소비자로의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며 비싸지는 타이어의 유통단계를 제조사-지점-소비자로 확 줄이면서 가격을 신발보다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제공했다.

“사업 초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로부터 타이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고 타이어제조업체로부터 공급 중단 등 견제도 많이 받았죠. 그럼에도 불구, 25여년이 지난 지금 국내 타이어 유통시장의 3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나름 성공한 거죠. 이제는 지리적 위치, 직원들의 전투력, 브랜드의 다각화, 가격 경쟁력, 첨단 설비 도입 등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김 회장은 ‘자동화 설비는 국내를 넘어 세계 최초’라는 점을 강조했다.

타이어뱅크 전국 대리점은 현재 365개로 종업원만 1300여명에 이르고 올해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김 회장이 가난한 어린 시절 먹은 것이 없어서 생사의 갈림길까지 다다르면서 결심한 꿈이 이뤄진 셈이다. 많은 사람들을 먹어 살리겠다는 신문팔이 시절 꿈도 이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반쪽짜리 꿈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전 회장을 경쟁상대로 삼고 꼭 이긴다는 다소 허황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 그 위치까지는 가지 못했으니 아쉽기만 합니다. 제가 정주영 전 회장이나 이병철 전 회장의 제조업 시대와 IT시대의 낀 세대로 과도기를 뛰어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국내 최초 CEO 사관학교 설립의 꿈을 꾸다=김 회장은 타이어 사업을 선택하기 전 ▷평생 할 수 있는 것 ▷나라 경제와 상관없을 것(경기와 무관하게 일관적인 판매가능) ▷세상에 이로운 일 등 3가지 사항을 고려했다.

그가 일을 하면서 가장 먼저하는 것이 ‘세상에 이로운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가 타이어 사업을 시작할 당시 자동차 500만대 시대로 한 해에 1만5000여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중 35%가 타이어로 인해 일어난 사고였지만 타이어 전문점이 전무했다.

“당시 90년대에는 타이어가 비싸다보니 한도가 지난 걸 사용했고, 타이어 전문점도 없다보니 품질과 규격이 안 맞는 타이어를 쓰는 운전자가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세상에 이로운 사업을 고민한 결과, 타이어뱅크를 시작하게 됐죠.”

김 회장이 타이어사업을 하면서 가장 긍지를 느끼는 것은 ‘타이어 가격하락을 이끌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소비자에게 환원한다’는 신념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유능한 경영자가 되겠다’는 김 회장의 신념은 이제는 ‘국내 최초 CEO 사관학교 설립’으로 발현되고 있다.

“영어와 수학을 잘 해서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 잖아요.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꽃은 CEO입니다. 전문 CEO를 육성해 더 많은 사람들을 먹어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진행 중인 꿈이예요. 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레입니다. 유능한 CEO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99%가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확신합니다. 세계를 제패하는 CEO를 육성하는 사관학교를 설립해 대한민국의 지속적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배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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