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할머니 6명이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 국민참여재판이의 7일부터 닷새동안 열린다.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1월 국내에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최장기로 진행하는 것이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손봉기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9시30분 대구법원 11호 법정에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모(82) 할머니 사건 국민참여재판을 시작한다.
▶치열한 법정공방=참여재판은 통상 하루 또는 이틀간 진행한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관례에서 벗어나 단일 사건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게 열린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2∼3일 더 진행될 수도 있다. 농약사이다 사건이 발생한 뒤 4개월여 동안 검찰과 변호인단이 서로 유무죄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일찌감치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580여 건의 방대한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검찰이 수집한 자료만 3500여 쪽에 이른다.
양측은 최초 신고자, 피해자, 마을 주민, 행동분석 전문가, 사건 수사 경찰관, 외부 전문가 등 모두 18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검찰은 박 할머니가 사건 전날 화투를 치다가 심하게 다퉜다는 피해자 진술, 피고인 옷과 전동휠체어, 지팡이 등 21곳에서 살충제(메소밀) 성분이 검출된 점, 집에서 살충제 성분이 든 드링크제 병이 나온 점, 범행 은폐 정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 등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검찰이 범행 동기, 농약 투입 시기, 고독성 살충제 구입경로, 드링크제 병에 피고인 지문 등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반박한다.
변호인단은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참여재판은 지방법원 관할 구역에 사는 만 20세 이상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다.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과 양형 의견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선고에서 이를 참작한다.
이번 재판은 배심원 선정, 검찰 공소사실 설명, 서류증거 조사, 증인 신문, 피고인 신문, 검사 의견진술, 피고인과 변호인 최종 의견진술, 배심원 평의· 평결, 판결 선고 등 순으로 진행한다.
▶배심원 판단은?=검찰과 경찰은 박 할머니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로 살충제 성분이 묻은 옷, 사건 당일 현장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 등을 내놓았으나 뚜렷한 ‘범행 동기’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이는 변호인단이 검경의 부실수사를 지적하는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농약 사이다 사건이 국민의 큰 관심을 끌었고 피고인이 고령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판결 오류를 최소화하겠다는 법원 의지도 담겨 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벼르고 있는 검찰과 변호인단은 배심원단 판단을 돕기 위해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증인 18명을 채택했다. 피해자, 최초 신고자, 마을 주민, 사건 조사 경찰관, 행동 분석 전문가 등이다. 더구나 양측은 583건에 이르는 증거자료도 법원에 냈다.
최근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판부가 배심원 평결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배심원단이 다수 증인 진술, 검찰과 변호인단이 내놓은 각종 증거 등을 종합해 사건 실체에 유무죄 평결을 내리더라도 재판부는 판결에 이를 전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상주 사이다 사건 재판에서 배심원 의견을 존중하지만 법리적 쟁점, 증거 등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고려해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시골마을에서 무슨 일이=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7월 14일이다. 오후 2시 43분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 있던 60~80대 할머니 6명이 사이다를 나눠 마신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들은 초복인 7월 13일 먹다가 남은 음료수를 마시던 중 입에 거품을 물고서 복통을 호소했다. 사이다병은 드링크제 뚜껑으로 닫혀 있었다. 이 가운데 2명이 병원에서 숨졌다. 중태에 빠진 4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서 차츰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마신 사이다에는 고독성 농약이 들어 있었다. 사건이 워낙 끔찍하다가 보니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사건 당시 마을회관에는 박 할머니를 비롯해 7명만 있었다. 경찰은 사이다병에 살충제가 들었다는 점에서 실수라기보다는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수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일 만인 7월 17일 함께 마을회관에 있었으나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모 할머니를 용의자로 체포한 뒤 같은 달 20일 구속했다. 박씨 집 주변 수색에서 병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이 나온 것을 유력한 증거로 내세웠다.
병 속에는 피해 할머니들이 마신 사이다에 든 살충제와 같은 성분의 살충제가 남은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에서 드러났다. 이 살충제는 무색무취한 맹독성 농약으로 2012년 판매를 금지했다. 살충제가 남은 자양강장제 병 유효기간과 할머니 집에 보관 중인 자양강장제 병의 유효기간이 같은 점, 살충제가 남은 병이 후미진 곳에서 나온 점도 의심을 샀다. 박 할머니는 수사 초기에 거짓말탐지기 사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직접증거 없어도 有罪 나올까=박 할머니가 사이다에 농약을 탄 범인이 맞는지가 참여재판에 핵심 쟁점이다.
검찰은 기소 과정에서 박 할머니 집에서 살충제 성분이 든 드링크제 병이 나온 점과 사이다병 뚜껑으로 사용된 드링크제 뚜껑과 유효기간이 같은 드링크제가 여러병 발견된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게다가 피고인 옷 등 21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점, 범행 은폐 정황이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 할머니가 사건 전날 화투놀이를 하다 심하게 다퉜다는 피해자 진술 등도 주요 증거로 내세웠다.
사건 당시 출동한 119구급대 블랙박스 영상에는 박 할머니가 살충제 사이다를 마시고 마을회관 밖으로 뛰쳐나온 신모 할머니를 따라나왔다가 다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 55분간 신고하지 않은 채 그냥 있었던 장면이 찍혀 있다.
또 검찰은 피고인에 대한 통합심리분석(행동분석, 심리생리검사) 결과에서도 ‘거짓반응’으로 나온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검찰은 주변인 진술을 토대로 “사건 전날 화투놀이를 하다가 다른 할머니와 싸운 것이 범행 동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검찰이 고독성 살충제 구입경로, 농약 투입 시기 등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점을 들어 무죄라고 반박하고 있다. 더구나 박 할머니가 70년 가까이 한마을에서 가깝게 지낸 할머니들을 살해할 동기가 없다고 강조한다.
변호인 측은 “벼농사를 지은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살충제를 살 필요가 없고 실제로 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고령인 만큼 심리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진범이 스쿠터 손잡이에 살충제를 묻혀 놓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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