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기회의 균등이었다. 결과의 평등이 아닌 개인에게 도전할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본인의 실력과 노력에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이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기회의 균등 중에서 교육 기회의 균등은 개인으로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장치이다.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의무교육 등의 형태로 헌법에서 교육의 기회 균등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는 이 기회의 균등이 붕괴되고 있고, 문제는 더 빠른 속도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3년 전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KAIST 등 주요 명문대학 재학생 30%이상이 소득 10분위(상위 10%)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현재 일부 명문대학에서는 신입생 절반 이상이 소득 10분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소득 10분위는 월 소득 천만원 구간이다. 소득 하위 10%의 월 평균 가구 수입 100만원의 10배에 이른다.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현장에서는 이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이하로는 영재고, 외고, 과학고, 자사고등 특목고 학생들이 비슷한 가정 소득 분포를 보이고 있다.

물론 경제력이 있는 부모가 더 좋은 교육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녀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자유 시장경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교육 서비스는 경쟁에 맡겨야 하는 것도 옳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는 학생의 노력과 역량에 의해서 결과가 결정되는 것보다, 부모의 신분과 경제력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문제의 연결 고리는 두 가지이다. 변별력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선행 학습. 수험생의 입시 부담을 낮춘다는 취지로 고등학교 교과 과정이 축소되고, 쉬운 수능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수로 한 문제만 틀려도 수능 등급이 떨어져서 입학 가능 대학교가 달라지는, 소위 실수 안하기 테스트가 되어버렸다. 수능 시험이 변별력이 없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올리는 방법은 특목고에 진학하는 것이다.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적어도 초등학교 중반부터 중학교 심지어는 고등학교 내용을 선행학습하면서 준비를 해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선행 학습은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선행 학습도 부모의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하고, 학생들은 어린 초등학교 때부터 지옥과 같은 무한 반복 선행 학습을 해야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빈부차의 확대이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시행했던 ‘과외 금지’ 정책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정부의 개입 없이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위헌이 된 과외 금지 정책을 다시 시행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공교육만 제재했던 선행학습 금지법은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쉬운 수능 정책은 실패했다. 또한 본 취지와 달리 전체 수험생의 10%가 넘는 학생들을 받는 특목고 정책은 분명히 왜곡된 선행 학습 환경을 만들어 냈다. 당장 교육의 기회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면, 앞으로 수십년 간 좋은 인재를 놓치게 된다. 경쟁력이라고는 인재 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좋은 인재를 선발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부의 대물림에 이어 신분의 대물림이 일상화되는 사회는 망국으로 이를 수밖에 없다. 교육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가정이 오랜 시간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런 고민을 현명하게 해결해 주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부모의 사랑과 헌신을 경시하고, 경제력만으로 냉소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비하하는 금수저 흙수저 비유는 매우 불편하지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2015년 한국의 슬픈 현실이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기가 끝났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수많은 개천의 이무기들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용으로 날 수 있도록 만드는 공평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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