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경선후보의 총구가 공화당을 향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를 향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날선 경고를 하는 등 트럼프의 공격에 공화당에도 발 등에 불이 떨어졌다.
게다가 공화당 주류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미네소타 한 곳을 겨우 챙기는데 그쳤고, 그나마 자신의 지역구 텍사스 주 등 3곳에 승리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은 극우 티파티 세력이 낳은 비주류, 이단아일 뿐 정통 보수도 아니다. 루비오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를 통해 반(反) 트럼프 전선을 구축하려던 공화당 내부의 전략도 사실상 물건너 간 상황이다.
▶‘트럼프의 당’으로 분열된 공화당=AP통신은 1일(현지시간) 슈퍼 화요일에서 트럼프를 승리한 것에 대해 “트럼프가 거둔 승리의 범위와 규모가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의 당이 대선에서 괴멸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진 주류들에게 공포를 심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대선 후보 지명을 ‘8부 능선’에 올린 ‘슈퍼 화요일’ 대회전으로 인해 당이 레이스에서 쪼개지는데 그치지 않고 결국 대선 필패, 당 해체의 공포마저 감돌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슈퍼 화요일’을 “공화당이 파열된 날”이라며 “공화당이 미 동부 연안의 주류, 사교계 일부 명사들이 수십년 간 지배해온 당이 더이상 아님을 생생히 증명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슈퍼 화요일’ 승리 연설에서 “우리는 공화당을 확장해왔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압도는 실상 공화당을 절반으로 쪼갰다. 백인 우월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에 대한 트럼프의 어정쩡한 태도를 일갈하며 대선 주자로서 “역겹고 실격”이라며 배제하려는 공화당 주류 세력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처럼 트럼프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 세력으로 양분된 것이다.
‘슈퍼 화요일’ 대회전에서 대승을 거둔 트럼프는 당장 공화당 지도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하는 등 공격의 총구를 공화당 조직으로 돌리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밤 경선 승리 연설에서 “나는 미 의회와 잘 지낼 것이다. 폴 라이언(하원의장),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와 잘 지낼 것”이라면서 “그러나 만약 (그 사람 때문에) 잘 못 지내게 된다면 그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이언 의장이 전날 KKK 논란과 관련해 자신을 공개 비판한 데 대한 반격이다.
트럼프는 또 이날 트위터에 “우리 정치인들을 조종하려는 사람들과 특별한 이해관계에 있는 이들이 TV광고로 나를 음해하려는 데에 2500만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안티 트럼프 총력전에 나선 공화당=트럼프의 압승으로 공화당이 사면초가에 놓이면서 공화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안티 트럼프 광고에 나서는 등 트럼프 후보에 벽을 치기 위한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공화당의 재정 후원자들은 ‘안티 트럼프 슈퍼팩’ 자금 모금을 위해 공화당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여기에는 헤지펀드 매니저 폴 싱어, 시카코 컵스의 구단주 토드 리케츠, 맥 휘트먼 HP 최고경영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티 트럼프 슈퍼팩인 ‘아워 프린시플스 팩(PAC)’은 다음주 트럼프를 반대하는 광고를 내보낼 예정이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아워 프린시플스 팩’은 최근 경선을 포기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보좌관인 팀 밀러를 고용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워 프린시플스 팩’을 설립한 케이티 패커는 “트럼프처럼 혐오스러운(abhorrent) 후보는 처음”이라며 “마지막 대의원의 표심이 결정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아워 프린시플스 팩’은 토드 리케츠의 어머니인 말린 리케츠가 낸 기부금 300만달러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루비오 단일후보 카드 버리나…꿩 대신 닭?=이와 함께 공화당 주류에서 밀었던 루비오 의원이 별다른 힘을 주지 못하자 일각에선 크루즈 의원을 대안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와 관련 “루비오 의원이 트럼프를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선의 희망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꿩 대신 닭을 통해서라도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크루즈 의원은 이날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3곳을 승리로 장식했다. 자신의 지역구이자 대의원이 가장 많이 걸린 텍사스(155명)는 물론 오클라호마(43명)와 알래스카(28명)까지 챙겼다.
텍사스에선 44%를 얻어 27%에 그친 트럼프를 17%포인트 차로 크게 제쳤다. 또 텍사스 바로 위에 붙은 오클라호마에서도 34%의 득표율을 기록해 28%를 얻은 트럼프에 6%포인트 앞섰고, 알래스카에서는 2%포인트의 득표 차로 값진 승리를 챙겼다.
오클라호마와 알래스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승리로, 크루즈 의원으로서는 이들 지역의 승리 덕분에 트럼프를 추격할 수 있는 상당한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대의원 확보경쟁에서도 트럼프에 크게 밀리지 않고 있다.
크루즈 의원이 현재까지 확보한 대의원은 총 226명으로, 트럼프의 316명에 비해서 90명이 모자란다. 하지만, 오는 15일 ‘미니 슈퍼 화요일’에서 선전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도 있는 격차다.
미니 슈퍼 화요일에 총 367명의 대의원이 걸린데다가, 특히 7개 경선지 가운데 플로리다(99명)와 오하이오(66명), 미국령 노던 마리아나스(9명) 등 3곳은 승자독식제도가 적용되는 지역이어서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대의원 격차를 크게 좁힐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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