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연예계엔 차마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고질병들이 있다. 통칭 ‘연예인병’이다. 난데없이 등장한 벼락스타, 긴 무명을 거쳤다가 연기로 활짝 핀 중고스타, 잘 나가는 배우들과 어울리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아이돌 스타에게 찾아오는 ‘병’이다.
병의 종류는 가지 가지다. 연기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가 대접받으니 찾아오는 ‘배우병’, 마침내 ‘톱’스타의 반열에 올라서니 지지리궁상이었던 과거사를 세탁하고 싶어하는 ‘주인공병’,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으니 찾아오는 ‘연예인병’이다.
증상은 일반적이다. 목에 깁스를 한듯 뻣뻣해진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 모든 것이 발 아래 있는 자들의 시선이 주는 아우라가 상당하다. 한 인기 남자배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깨에 빅맥 두 개”가 들어간 것처럼 거만해진다. ‘겸손’과 ‘존중’의 미덕은 이들에겐 없다.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말이 나기 시작한다.
‘배우병’은 주로 코미디언이나 아이돌그룹 멤버들에게서 나온다.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그룹 멤버의 경우 가수로 무대에 설 때와는 다른 신세계를 경험한다.
드라마 촬영현장엔 일종의 서열이라는 것이 있다. 톱스타급의 주연배우는 어디에서든 1순위, 그 이후로 감독, 조연배우 순이다. 감독이 스타거나 거장일 경우는 순위 변동이 오기도 한다. 순위에 따라 차등이 매겨지는 공간에선 대접과 홀대가 공존한다.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들이 경험하는 낯선 세계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그룹을 양성하는 기획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매니저와 소속 연예인의 관계가 수평적이다. 일부 배우 매니지먼트에선 왜 이렇게 연예인에게 함부로 대하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요기획사가 소속 아티스트와 수평 관게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초기 투자에 있다. 연습생 시절부터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가수로 키워내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연습생이었던 한 사람을 트레이닝해 스타로 키워낸 노하우가 1순위이지 멤버 개개인이 콘텐츠는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한 인격체로 대한다”고 한다.
그러다 넘어온 배우의 세계의 다르다. 연예인의 눈치를 살피며 화장실 동선까지 파악하고, 목이 마를까 물을 대기시키고, 눈짓 한 번에 옷을 걸쳐주길 반복하는 세상으로 들어오니 금세 변할 수밖에 없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가요기획사와는 달리 배우는 소속사의 유일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수 밖에 없다. 스타 한 사람의 유무가 회사의 인지도이고 매출이다. 그 사람이 없으면 회사 차원에서도 어려움이 많기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인데 일부에선 지나친 수직관계, 상하관계를 만들어 연예인에게서도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형배우들이 소속한 연예기획사의 한 매니저는 자신이 관리하는 배우와 아이돌그룹 멤버가 함께 출연한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배우는 나랑 겸상을 안 하려고 하는데 아이돌을 보니 자기가 식탁까지 차리며 스타일리스트를 챙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는 결국 대형 기획사를 떠나 해당 아이돌그룹 멤버가 소속된 가요기획사로 이직했다.
누구라도 난데없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면 실제의 자신보다 지금의 자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반짝스타들의 경우 일시적인 주목과 인기에 도취돼 힘이 들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폭발력이 큰 TV드라마를 통해 주목받은 중고신인들의 경우 금세 자아도취에 빠진다. 한 케이블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은 배우는 단박에 지상파 드라마에 입성했다가 ‘톱스타’ 행세로 구설에 올랐다. 함께 출연하는 진짜 톱배우마저 당황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이미 그 이전 업계에서 해당 배우의 태도가 구설에 올랐기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속배우들의 부적절한 태도에 매니저들도 속이 탄다. 매순간 비위를 맞추고 달래야 겨우 하루 일정을 끝낼 수 있다. 행여 뒷말이라도 날까 전전긍긍하기 일쑤다.
최근 인기 걸그룹 멤버는 모 중국 웹예능 촬영현장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일찌감치 예능과 연기의 맛을 본 이 멤버는 PD와 작가가 이야기하는 요구사항마다 “내가 이걸 왜 하냐”고 토를 달았다. 결국 예정돼있던 90분 녹화는 45분 만에 종료됐고, 제작진은 말도 못 한 채 한숨만 쉬는 상황이 이어졌다. 화병은 주변인들의 몫이다.
흥미롭게도 업계 고질병 중 또 하나는 ‘연에인병’ 스타를 모시는 연예기획사 매니저와 홍보 담당자도 같은 병을 앓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케어하는 스타가 잘 나가자 덩달아 자신도 잘 나간다는 착각. 정작 배우는 겸손한데, 소속사의 불손함에 될 것도 안 되는 사례가 많다.
지금도 대세로 불리는 한 남자배우는 인기 캐릭터로 주목받은 영화 이후 물 밀듯이 밀려드는 인터뷰에 쾌재를 불렀다. 문제는 소속사에서 인터뷰를 잡는 과정에서 취재기자들에게 ‘카페 대관’ 명목으로 ‘지참금’을 요구하는 발언을 해 업계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다. 현재 이 배우는 진작에 해당 소속사를 떠났다.
인기드라마에 출연한 여주인공의 소속사도 최근 장안의 화제였다.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부터 얼굴을 마주한 순간까지 소속 배우보다 더 한 불쾌한 태도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말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뷰 자리에선 배우에게 눈치를 주며 특정 질문엔 대답하지 말라는 사인도 보냈다가 불만이 높아졌다. 가뜩이나 ‘연예인병’ 루머가 끊이지 않았던 배우의 소속사가 보낸 갑질에 한바탕 파문이 일었다.
소위 말하는 ‘연예인병’은 유명세로 인해 따라오는 병이다. 알아보니 신이 나고, 떠받을주니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도취가 된다. 증세 완화의 특효는 애석하게도 ‘인기의 추락’이다. 거만하기 그지 없던 스타들은 인기가 떨어지면 금세 제자리로 돌아온다.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우가 달라졌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한 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배우 겸 가수는 최정상의 자리에 있을 당시 고개가 내려올 줄을 몰랐으나, 인기가 서서히 하락하자 ‘초심’을 찾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한 인기 남자배우는 실제로 이 같은 ‘병’을 고백했다. 과거 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그는 “부끄럽게도 스타병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매니저 없이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만 밥을 먹었다”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면박을 주거나, 친구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많은 인기로 인해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배우는 그 때를 떠올리며 ‘구름 위에 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스스로 깨달아 3개월 만에 완치됐다. 누구나 구름 위에 살다보면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 ‘인기’, ‘인지도’는 그들을 만드는 팔 할이다. 하지만 올라가면 내려오기 마련이고, 지금 향한 관심은 언젠가 다른 누구에게로 이동하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한 여배우는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고 수십 편의 CF를 찍으며 인기가 높아지자 모든 것이 우스워보였던 때가 있었다. 행동, 표정, 주위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 시간이 길어지니 모두가 나를 떠났다”고 고백했다. 다시 돌아올 때 그토록 갈구하던 인기도 사람도 잃을 수 있다. 건강관리는 진작에 해둬야 리스크가 적은 법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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