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 인디록의 본좌, 펑크 1세대. 주로 이렇게 불린다. 1996년 홍대 클럽 드럭에 이상한 밴드가 등장했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이들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노브레인은 1995년 앞서 드럭을 통해 등장한 크라잉넛과 함께 홍대 인디록의 양대산맥이 됐다.

“크라잉넛이랑 많이 헷갈려해요. 저희 부모님도 그래요. TV 보다가 너희 언제 저기 나왔냐?”(정민준) 이젠 사람들의 ‘헷갈림’을 즐길 정도다. 2014년 두 팀은 ‘96’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노브레인의 노래는 크라잉넛이, 크라잉넛의 노래는 노브레인이 부른 재밌는 기획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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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라도 누군가는 노브레인을 보며 꿈을 키웠다. 밴드 O.O.O(오오오)의 보컬 가성현과 베이스 김학겸은 중동고 시절 노브레인을 보며 밴드의 꿈을 키웠다. 교내 밴드 ‘헌드레드(100)’로 활동할 당시 에피소드가있다. “제 별명이 일원동 불대가리였어요. 노브레인을 좋아해서 머리를 따라했어요. 그 때가 밴드의 시대였죠.”(가성현) 노브레인 보컬 이성우은 울긋불긋한 헤어스타일 덕에 ‘홍대 불대갈’로 불렸다. “못생겨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저희가 준 거죠. 크크”(이성우)

젊음의 에너지를 한없이 쏘아대던 펑크록 밴드는 떡잎부터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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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청년폭도맹진가’(2000년)로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걸었다. 두 번째 앨범 ‘비바 노 브레인(Viva No Brain)’을 발매한 이후 위기 아닌 위기가 왔다.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탈퇴. “차승우 형은 기타가 신의 레벨이라 노브레인의 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컸어요. 저의 모토가 된 차승우 형과 20주년 앨범을 함께 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있죠.”(기타 정민준) 현재 모노톤즈로 활동 중인 차승우는 이 때까지 노브레인의 음악을 만드는 중심에 있던 멤버였다.

노브레인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건 2004년 발매한 3.5집 ‘넌 내게 반했어’가 영화 ‘라디오스타’에 삽입되면서다. 노브레인은 이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 무렵은 노브레인 20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후 노브레인은 그들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갔다. 차승우의 빈자리를 채운 보보 정민준의 합류 이후 노브레인의 색은 보다 선명해졌다.

연주도 보컬도 “날 것의 냄새가 강했던” 초창기를 지나 이들은 조금씩 묵직하고 편안해졌다.

“어렸을 땐 가지고 있는게 별로 없다 보니 세상 무서운게 없었다”(이성우)고 한다. 팔딱팔딱 뛰어 놀던 이전의 창법을 이성우는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날라차기하며 싸우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조금 더 편안해졌다. 힘을 많이 뺐다. “형이 예전엔 헬스를 하면서 노래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요가를 하면서 준비해요.”(정민준) “에너지를 채우려고만 하면 채워지지 않아요. 빼려고 해야 채울 수 있죠. 요가한 날 노래를 부르는게 편해요. 몸이 덜 무겁고, 개운하고, 잡생각도 사라지거든요.”(이성우)

보컬이 달라지니 연주도 당연히 변화가 찾아온다.

“다들 점차 안정적이 됐고, 조금씩 묵직해졌어요. 가장 큰 변화는 민준이가 들어오면서죠.”(이성우)

“제가 들어간 이후 노브레인 사운드가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타가 주축이 된 사운드보다는 호흡이 중심이 된 사운드로요.”(정민준)

노브레인은 한결같이 지금의 그들을 노래했다. 1, 2집 초창기 시절엔 가진 것 없는 청춘을, 4, 5집을 거치며 힘들고 지친 청춘에게 ‘우리 그냥놀자’고 했다. 중년의 문턱에서 발매한 7집에선 “더이상 청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철이 덜 든 상태에서 나이는 너무 많이 먹어버린 혼란스러움을”(황현성) 노래한다. 노브레인은 그 시절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게 노브레인의 정체성이다.

“식당 사장님들이 아낌없이 서비스를 주니”(정민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숨겨진 자아를 폭발시킬 수 있는 데다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이성우) 이들에게 노브레인이라는 밴드는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실컷 탈 수 있는 놀이공원 같은 곳”(정우용)이다.

20주년이라고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진 않았다. 기념 앨범을 내고, 공연을 생각하고 있는 정도다.

“음악을 하는 건 계속 성장해가는 것”이라는 노브레인은 지난 20년 악착같이 음악을 놓치 않고 홍대의 변화를 지켜봤다. ‘본좌’, ‘전설’이라는 수사를 달고 다니게 된 노브레인이 후배들에게 바라는 건 하나다. “돈 때문에 음악의 꿈이 좌절당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악바리처럼 음악을 이어갔으면” 싶은 마음이다.

“언젠 록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나. 그래도 우린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지금과 똑같이 이러고 있을 거예요.” (노브레인)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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