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묵직한 피아노가 낮고 깊은 소리로 시작된다. 조금은 놀랄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햇살이 좋은 날 듣고 흥얼거리기엔 무거울 수 있죠.” 말을 하듯 노래를 이어지면 잠시 숨을 죽인다. “세상이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아요. 누구나 상처받고, 고민하고… 저 역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고요.” 자기 고백처럼 문을 여는 첫 곡(카인드)은 4분 20초 동안 듣는 사람에게로 서서히 스며든다. 베이스처럼 낮은 음성이 온기를 품고 있다.
5월의 햇살이 밝은 날,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주윤하를 만났다. 새로운 소속사(씨앤엘 미래광산)를 찾은 뒤 앨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0곡을 빼곡히 채운 앨범은 디지털 음원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CD로 먼저 발매됐다. 음원 공개도 순차적으로, 심지어 세 곡은 미공개 상태다.
“싱어송라이터라는 포지션이 요즘 음악시장에 발 맞춰 움직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고민이 들었어요. 한 곡 한 곡이 소중하지만, 싱어송라이터는 앨범으로 대중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설가가 스무 페이지 정도의 소설만 발표하면서 과연 소설가라고 할 수 있을지… 좀 우스워질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장편소설 같은 앨범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윤하는 2005년 모던록 밴드 보드카레인(Vodka Rain)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로 대중 앞에 섰다. 솔로앨범을 처음 발표한 건 2011년. 보컬이 유학을 떠나며 밴드 활동을 접게된 무렵 본의 아니게 음악적 휴식기가 찾아왔다.
“할 일이 없어져 힘들었어요. 다른 밴드를 만들고 싶진 않았고요. 나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정규 앨범 ‘온 더 웨이 홈(on the way home)’부터 이후 EP 앨범 ‘투 어스(to us)’를 발표했고, 2014년엔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첫 재즈 앨범 ‘재즈 페인터스(Jazz Painters)’를 냈다. 일 년에 한 장씩 앨범을 내기에 팬들은 그를 ‘음악 모범생’이라 부른다. 요즘 말로 ‘열일’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베이스를 다루며 다져놓은 음악적 스펙트럼은 앨범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주윤하의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가사로 나왔다.
“어릴 때의 감정들이 토해지듯 나왔어요. 자연스럽게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적어간 거죠.”
이번 앨범은 사실 “1집의 연장선”에 있다. 자기 안에 깊숙히 갇혀있던 감성(카인드)을 꺼내 놓으니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비겁한’ 나를 발견한다. 복잡한 가정환경, “도망치고 싶던 유년시절”의 기억(너에게 닿을 때까지)들은 음악을 만나 희망을 발견한 듯 템포감 있게 이어진다. “자전적인 이야기이지만 도리어 제 안의 이야기와 감성을 조금은 덜어냈어요.”
때로는 사랑을 시작하듯, 그것에 아파하듯, 그러다 긴 이별을 겪고 이겨내듯 노래하지만 주윤하의 앨범엔 그가 살아오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내내 무거울 수 있었는데, 모던하고 세련된 사운드와 템포감이 느껴지는 곡들이 많다. ‘두 손’을 꼭 잡은 연인이 사뿐사뿐 봄을 거닐 때 들릴 만한 따뜻한 봄노래도, “토마스 쿡을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듀엣을 한” 경쾌한 느낌의 ‘고!(GO!)’도 자리했다. 주윤하의 폭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재즈부터 신스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던 그의 색깔이 하나로 모아졌다.
주윤하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주윤하다운 노래”로 ‘같이 있자’를 꼽는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노래죠. 평상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 많이 녹아있어요. 쓰다 남은 외로움들이 우리를 삼킬 때, 누군가 쌓아온 절망이 우리를 감쌀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가만히 같이 있어주겠다는 그런 노래예요.”
앨범의 구성은 ‘기승전결’을 고민했다. 10번 트랙은 ‘용서’로 결정됐다. “저 역시도 상처와 이루지 못한 꿈에 매여있지 않았나. 이번 앨범을 통해 벗어나고 싶었어요. 1번 트랙 ‘카인드’와 맞물린 노래예요.”
무겁고 심오했던 이전 앨범과 달리 주윤하는 새 앨범을 통해 ‘덜어내는 작업’에 집중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깊어지지 않으려는 노력들도 있었다. ‘카인드’가 앨범 제목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기억하기 쉬운 단어로 타이틀을 정한 거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음악 안에 녹아있으면 되니까요.”
이젠 싱어송라이터가 익숙해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종종 주윤하에게 “노래 안 하고 어떻게 참았냐”고 묻는다. 사실 노래방을 가지도 않고, 노래하는 것 자체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주윤하는 그가 다루던 악기처럼 묵직하고 독특한 음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가 됐다. 베이스가 낮은 음으로 밴드를 조화롭게 아우르듯 주윤하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처럼 한 곡 한 곡에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조금씩 덜어내고, 혹은 채워넣는 작업을 오가도 주윤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짙은 감성은 그의 음악 곳곳에 묻어있다.
“어느 순간 후크송을 할 수도 있고, 트렌드를 따를 수도 있겠죠. 음악엔 귀천이 없으니까요. 다행인 건지 시류를 좇는 음악을 좋아하진 않아요. 전, 길게 음악을 하고 싶어요. 범대중에게 스쳐가는 음악보다는 어떤 사람의 한 시절, 한 계절이 될 수 있는 음악을 하는게 제 꿈이에요. 하고 싶은 음악들이 많아 참 다행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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