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회> 열망을 품은 도전 6
“까짓 사전답사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가장 중요한 미캐닉에 대한 믿음이 확실치 않은데…. 어째서 그 여자를 두둔하기만 하지요?”
서비스 파크에 도열해 있는 명차를 보다가 근심이 재발했는지, 김지선이 또다시 현성애의 튜닝 실력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글쎄 드라이버인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요? 당신은 나를 잘 보조하면 되는 겁니다. 내비게이터 역할이나 충실히 하세요. 우린 이번 랠리에 꼭 입상하지 않아도 돼요. 이 다음번에 개최될 5개국 관통 랠리의 실전연습 삼아 출전한 거니까.”
“그렇지 않아요. 나는 입상해서 상금을 거머쥐려고 온 것이지 예행연습 따위나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요. 어째 이상하다 했어요. 얼음판에서 벌어지는 동계 랠리에 출전할 차량을 후륜구동으로 개조한 것부터가 말도 안된다 싶더니….”
권도일은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1974년 산 치타는 몬테카를로 랠리를 겨냥해서 튜닝한 것이 아니었다. 목표는 5개국 관통 랠리였다는 말이다. 그 경기에서는 여름철 모래사막과 산악 질주가 승패를 가늠하는 경기 아니던가. 치타 엔진을 무려 6000㏄에 500마력으로 높인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빙판길을 달리게 될 겨울철 몬테카를로 랠리를 위해서는 그토록 무지막지한 출력을 이끌어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경쾌한 동작과 제동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훨씬 합당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실력으로 승부하긴 이르다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운을 기대해 본 겁니다. 로또를 맞춰보자는 거지요.”
“경기 당일, 온도가 높아서 얼음이 녹길 바란다는 말씀인가요?”
“어쨌거나…이번 시즌에서는 우리 둘의 호흡 맞추기가 더 중요한 숙제인지 몰라요. 어차피 우리는 내년 여름 열릴 5개국 관통 랠리에도 함께 출전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영원한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권도일은 이렇게 말하면서 김지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상대가 흥분했을 때에는 무조건 스킨십을 감행하고 볼 일이라고 그는 늘 믿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열에 받쳐 들먹이던 그녀의 어깨는 이내 잦아지더니 그녀 역시 두 팔로 권도일의 허리를 꼭 끌어안기 시작했다.
“맞아요, 우린 영원한 파트너가 되어야 겠지요. 사실 나는…이번 경기에서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호크아이팀의 유호성을 이기고 싶을 따름이에요. 유호성, 그 나쁜 놈…얼마전까지 영원한 파트너인 척하던 그 놈을 치타의 뒤꽁무니로 따돌려야만 내 속이 후련해질 거란 말이지요.”
결국 그녀는 유호성을 떠올리고야 만 것이다. 목포 인근 무인도 여행에서 최악의 수치를 당한 뒤로 다시는 생각조차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무시로 떠오르는 유호성의 모습을 잊기 위해 어쩌면 이번 랠리에 더욱 집착하는지도 몰랐다.
“그만 잊어버리세요. 그깟 찌질한 남자. 우리 실력이 아무리 모자란들 그깟 얼치기쯤이야 이기지 못할까요?”
“물론 이겨야지요. 하지만 그 작자가 모는 랠리카가 재규어 XKR인 데 비해서 우리 차가 너무 낡았다는 생각에 잠시 화가 났을 뿐이에요. 이젠 괜찮아요. 오늘 밤 푹 쉬고 나면 한결 상쾌해질 거예요. 내일 아침엔 코스 답사를 하면서 페이스 노트를 꼼꼼히 작성할게요. 어느 구역에 얼음이 얼고, 어느 코너에 경사가 졌는지….”
“고마워요, 지선 씨. 알고 보니 우린….”
일심동체와 다름없었으므로 권도일은 그녀의 이마에 가만히 입술을 포개었다. 어쩌면 복수심에 들끓는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유호성에게 버림받은 사실에 치를 떨고 있다니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나의 적을 적으로 여기는 사람이니 결국 아군인 셈이다. 그녀 또한 유호성을 원수로 여기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 권도일은 더 이상 속내를 내보이지 않았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 때문이었다. 아직 그녀에게 온전한 속내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한 팀원으로서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차라리 오늘 밤, 이 여자를 데리고 잘까? 그런 뒤에 훌훌 속을 털어놓을까? 권도일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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