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회서 ‘반도체 주 52시간’ 찬반 토론회

이재명 대표 좌장 맡아…삼성·SK도 패널로

경쟁국 미·일·대만은 전문 연구개발직 제외

“1년 단위 프로젝트 종사자에 유연함 필요”

TSMC와 엔비디아 등 해외 반도체 기업 직원들은 근로시간 제한 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근로시간 규제가 과도해 K-반도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챗GPT로 이미지 제작]
TSMC와 엔비디아 등 해외 반도체 기업 직원들은 근로시간 제한 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근로시간 규제가 과도해 K-반도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챗GPT로 이미지 제작]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국내 반도체 업계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놓고 오는 3일 국회에서 찬반 토론회가 열린다.

2일 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이날 토론회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측의 입장을 전할 각 사 실무자들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가 나서 반도체 연구개발 종사자의 주 52시간 예외 필요성을 주장할 예정이다. 반대 측 패널은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이 섭외한 노동계 인사들로 꾸려진다.

토론회 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맡는다. 이 대표는 앞서 신년 기자회견에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포함된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실용적으로 판단하자”고 밝히며 입장 변화 가능성을 시사해 이날 토론회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숙원…무산 위기에서 토론회로 관심 재점화

이 대표는 “노동계는 지금 있는 제도도 충분하다, 잘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인 것 같고, 산업계는 부족하다, 꼭 필요하다고 한다. 토론을 해보면 일정한 합의점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치권과 반도체 업계는 이 대표의 의중이 향후 반도체특별법 심사 절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사 중인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을 주 52시간 근로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3일 오전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에 담긴 주 52시간 적용 제외를 둘러싼 정책 디베이트(토른회)를 개최한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더불어민주당이 3일 오전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에 담긴 주 52시간 적용 제외를 둘러싼 정책 디베이트(토른회)를 개최한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업계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만큼 미국처럼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고위관리직·전문직·컴퓨터직 등에 종사하면서 주 684달러 이상을 버는 근로자 ▷연소득 10만7432달러 이상인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을 시행 중이다.

일본 역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라는 이름으로 2018년부터 금융상품 개발이나 애널리스트, 신상품 연구개발 등에 종사하면서 연소득 1075만엔 이상의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주 40시간제를 채택한 대만은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를 8~12시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TSMC의 R&D 조직은 24시간, 주 7일 돌아간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의 류더인 전 회장은 지난 2023년 6월 미국 애리조나 공장 직원들의 근로시간 불만에 대해 “장시간 근무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실용’ 앞세운 이재명 대표에 반도체 업계도 주목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뉴스룸]

이처럼 첨단 반도체 산업 패권을 두고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해외 기업들이 유연한 근로시간을 보장받으며 R&D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국내에선 업종을 막론하고 일괄적으로 주52시간 규제를 받는 상황이다.

그러자 작년 12월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가 10개월 간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재차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 예외’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혁재 서울대 교수는 당시 “30분만 더 일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퇴근을 해야 하니까 다음날 다시 일을 처음부터 하게 되고, 그러니 기술 개발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현 SK하이닉스 사장도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말하면, TSMC는 엔지니어가 늦게까지 남아 일하면 특별수당을 주고 장려한다고 하더라”며 “개발을 하다보면 가속이 붙어서 관성으로 갈 때가 있는데 주 52시간제는 개발이라는 특별한 활동을 할 때 부정적인 습관이나 관행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진 국내 현실을 반영해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찬성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민주당이 반대하면서 작년 말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최근 ‘실용’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우고 입장을 선회한 만큼 향후 반도체특별법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단위의 장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연구개발 업무 특성상 업무의 ‘연속성’이 중요하다”며 “현행 주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는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제약이 큰 만큼 빠른 법안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