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로 청파동 누비는 최연소 기사

‘보이지 않는 노동’까지 하루 10시간 운전해도

시내버스 처우 60% 불과한 열악한 업무 환경에

너도나도 마을버스→시내버스·배달업계로 ‘줄행랑’

마을버스 기사 어창열(23) 씨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만리재로 한 버스정류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마을버스 기사 어창열(23) 씨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만리재로 한 버스정류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아이씨 또! 아 진짜…. 쯧 정말.” 불쑥 끼어든 오토바이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된 용산 04번 마을버스 기사 어창열(23) 씨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빵-’ 경적이 순간 승객들의 한쪽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울렸다. 그는 서울 마을버스 기사들 가운데 가장 어리다.

“이런 상황이 하루에 20번씩은 있어요. 오토바이든 택시든 버스 앞으로 훅 들어오는 게 있으면 어찌 됐든 우리는 급브레이크 밟아야 하는데 그러다 승객들이 넘어질 수 있잖아요. 나 혼자 있는 거면 상관없는데 승객들이 탔으니까 더 예민해지는 거죠.”

오토바이와 접촉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을 피했더니 이번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등장했다. 큰 S자를 그리며 숙명여대와 초등학교, 어린이 보호구역 등을 차례로 지나 다다른 곳은 청파동 만리시장.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씨는 승객들에게 ‘교행 때문에 잠시 대기하겠다’고 안내했다.

왕복 차량이 동시에 지날 수 없을 정도로 차도가 좁은 데다 도로 양쪽 가장자리마다 주정차 된 냉동탑차, 오토바이 등이 줄지어 있어 기사의 신경이 곤두섰다. 갑자기 무단횡단하거나 차도로 튀어나오는 이들도 피해야했다. 어씨는 이렇게 서울역 서부에서 출발해 효창공원→대한노인회중앙회→용산경찰서→남영역→숙대입구역 등을 거쳐 다시 서울역 서부로 돌아오는 노선을 하루 7~8시간씩 동안 돈다.

마을버스 용산 04번 노선도. 기사들은 서울역 서부에서 출발해 효창공원→대한노인회중앙회→용산경찰서→남영역→숙대입구역 등을 거쳐 다시 서부역으로 돌아오는 노선을 하루 7~8시간씩 동안 돈다. [네이버 지도 캡처]
마을버스 용산 04번 노선도. 기사들은 서울역 서부에서 출발해 효창공원→대한노인회중앙회→용산경찰서→남영역→숙대입구역 등을 거쳐 다시 서부역으로 돌아오는 노선을 하루 7~8시간씩 동안 돈다. [네이버 지도 캡처]

시내버스·배달로 줄줄이 이탈…마을버스 기사 5년새 2000명대로 ‘훅’

‘시민의 발’ ‘대중교통의 모세혈관’이라고 불리는 마을버스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①낮은 처우 ②빡빡한 일정 ③난코스 운전 등 마을버스 근무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보니 운전기사의 이탈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가 닿지 못하는 골목들을 누비며 교통 공공재 역할을 하는 마을버스이지만 정작 운전할 기사가 없어 운수업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17일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실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마을버스 운전기사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줄고 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0년 3261명 ▷2021년 2992명 ▷2022년 2843명 ▷2023년 2851명 ▷2024년 2836명으로 최근 5년 동안 운전기사 수가 약 13%(425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차량 대수도 21대 줄었다(2020년 1655대→2024년 1634대).

서울시 마을버스 업체 차량대수 및 운전기사수
서울시 마을버스 업체 차량대수 및 운전기사수

서울의 한 마을버스 운수회사 대표는 “마을버스 기사 월급이 시내버스 기사보다 턱 없이 부족하다”면서 “돈은 적게 버는데 일은 일대로 힘드니까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시내버스나 배달업계로 많이 빠지고 마을버스엔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돈 받고 강행군 할쏘냐”…화장실 가고 밥 먹을 시간도 ‘빠듯’

마을버스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는 가장 주된 이유는 ①낮은 처우다. 서울 마을버스 운전기사의 월평균 급여는 2024년 기준 316만8650원으로 서울 시내버스 4호봉 평균(근속 8년 기준)인 523만원의 약 60.5% 수준에 불과하다.

②‘쉴 틈 없는’ 일정도 마을버스 기사의 이탈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현장에서 만난 마을버스 기사들은 ‘휴식은 사치’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기사 70대 A씨는 “담배 한 대 물 시간이 생기면 운이 좋은 거고 보통 같으면 화장실만 겨우 갔다 올 정도의 시간밖에 없다”라고 했다. 60대 마을버스 기사 B씨는 “휴게공간이 마련돼 있어도 애당초 버스에서 내리지를 못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어씨는 마을버스 운전 시 ‘시간 압박’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는 “교통상황이 어떻고 승객이 얼마나 많이 타고 내리는지에 상관없이 마을버스는 무조건 정해진 시간(50분) 안에 노선을 한 바퀴 다 돌아야만 한다”면서 “한가한 시간대면 5~6분 정도 쉴 수 있는데 출퇴근 시간 같이 승객과 차량이 모두 몰릴 때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종점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간다”라고 말했다. 이어 “식사도 쫓기면서 하다 보니 밥 한 공기 비워내는 데 5분이면 족하다”라고 덧붙였다.

어씨는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노동’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 근무조일 경우 첫차 운행 시각인 오전 6시 전까지 차량 가스 충전을 마쳐야 하므로 새벽 4시부터 움직인다고 했다. 그는 “삼각지역 인근 차고지에서 차를 끌고 상암동에 있는 충전소에 가서 가스를 채운 뒤 서울역 서부로 도착하는 ‘강행군’이 오전 근무에 숨어있다”면서 “이런 시간까지 따지면 사실상 10시간 남짓 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N년차 운전 경력도 ‘쩔쩔매는’ 고난도 노선에…젊은 기사들 “딱 1년만 버텨”

③베테랑도 운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도 마을버스 기사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20년 동안 시내버스를 몰다 정년을 채우고 9년 전 마을버스로 넘어왔다는 윤석찬(76) 씨는 “마을버스가 운행거리는 짧아도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기 때문에 시내버스보다 훨씬 더 좁고 복잡한 길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을버스 기사 윤석찬(76) 씨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만리재로 한 버스정류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마을버스 기사 윤석찬(76) 씨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만리재로 한 버스정류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윤씨는 또 “젊은층이 많이 타는 시내버스와 달리 (마을버스에는) 60~70대의 나이 든 승객들이 많고 그중에는 버스 계단 올라오는 것도 힘겨워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이분들은 내가 브레이크를 살짝만 밟아도 넘어질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신경 쓸 게 더 많다”라고 설명했다.

팍팍한 근무 환경 탓에 마을버스 업체에 유입되는 청년층은 늘 저조한 상황.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 마을버스 기사 중 ‘60대 이상’ 비율은 63.57%(1889명)인 반면 ‘20~30대’는 9.76%(290명)로 10%도 채 되지 않는다.

보기 드문 ‘20대 기사’ 어씨 역시 마을버스 운전 1년 경력을 채우고 나면 시내버스로 옮겨갈 계획이다. 어씨는 “대표님도 내가 시내버스로 넘어갈 예정인 걸 잘 알고 있으시다”면서 “오히려 나한테 ‘여기서 사고만 치지 말고 (시내버스로) 가’라고 말씀하시더라. 마을버스 관계자라면 ‘젊은 사람들은 시내버스로 가기 위해서 마을버스를 거쳐 간다’는 사실을 다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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