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 들려온 한국 섬유산업의 큰 별, 고(故) 장치혁 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의 별세 소식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한국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거목(巨木)으로 우뚝 섰던 한 기업가의 삶이 남긴 궤적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일생은 1932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중고 견직기 5대로 시작해 재계 17위의 고합그룹을 일궈낸, 그야말로 우리나라 산업화의 압축판이다. 500달러의 배삯이 없어 유학의 꿈을 접고 방산시장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던 청년 장치혁은 시장에서 체득한 현장의 감각을 바탕으로 ‘땀 흘려 일하는 가치’를 경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다.
기술 자립을 향한 고인의 집념은 대한민국을 기술 변방국에서 세계 화학섬유 7위 강국으로 도약시킨 마중물이 되었다. 1974년 나일론 중합공정의 90% 이상을 국산화한 기념비적 성취는 물론, 미쓰이석유화학의 시스템을 우리 실정에 맞게 체화하여 일궈낸 최초의 ‘국산화 플랜트’는 오늘날 롯데케미칼 울산공장의 모태로서 우리 산업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97년에는 울산단지에 원료부터 제품까지 수직 계열화를 이룬 종합 콤플렉스를 완공하며 섬유·화학 산업 고도화의 정점을 찍었다.
1980년대 고합그룹이 보여준 ‘투명경영’과 ‘기업의 공공성’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이는 기업을 개인의 사유 재산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조직으로 바라본 고인의 통찰이었고, 부동산 투기를 멀리하고 제조업의 본질에 집중했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경영자들이 되새겨야 할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 싶다.
섬유업계 수장으로서 고인의 역할 역시 지대했다. 1992년부터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1993년 중국 섬유산업과의 연례 회의 시작, 1994년 직물 단일품목 수출 100억불 달성 등 섬유산업의 수출확대와 기술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제 필자는 기술 자립, 산업의 품격,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고인의 고귀한 뜻을 이어받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으로서 그 책임의 무게를 준엄하게 마주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첨단 고부가 구조로의 전환, 그리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난제들은 AI 기술의 급격한 변화와 냉혹한 통상 환경 속에서 우리 섬유패션산업을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격랑 속에서도 고인이 평생을 일궈놓은 비옥한 토양은 후배 기업인인 우리에게 여전히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섬유패션인들도 고인의 개척 정신을 나침반 삼아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K-웨이브를 타고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며 국가 경제의 핵심축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때이다.
비록 거인 장치혁 회장 개척자의 길은 여기서 멈췄지만, 그의 발자취는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역사 속에 분명한 좌표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최병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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