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도쿄 아사쿠사에는 누더기 옷 1500벌을 모아 전시하던 미술관이 있었다. 에도 시대 일본 북부, 무명천이 귀하던 시절 농민과 어민들은 해진 옷을 버리지 못하고 자투리 천을 덧대 기워 입었다. 흰 실로 촘촘히 박는 바느질을 사시코(刺し子), 그렇게 누덕누덕 기운 천을 보로(ぼろ·襤褸)라 불렀다. 한 벌의 옷이 삼대를 건너는 동안 기운 자국은 켜켜이 쌓였고, 자국 하나하나가 한 가족이 견뎌낸 겨울의 기록이 됐다. 가난의 표식이던 그 옷은 이제 미술관에 걸리고, 경매에서 값이 매겨진다.
이런 정신은 일본만의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조각보는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 천을 ‘복을 잇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이어 만든 보자기다. 지금은 몬드리안의 추상화에 비견되며 박물관에 전시된다. 영국에는 2차 대전 시절 정부가 벌인 ‘메이크 두 앤드 멘드’ 캠페인이 있었다. 옷이 배급되던 때 사람들은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었고, 정부는 이렇게 가르쳤다. “잘 기운 자국은 명예의 훈장이다.” 미국에서도 깁는 것이 애국이라는 구호가 퍼졌던 기록이 있다.
이 오래된 정신이 2026년 다시 돌아왔다. 올해 해외 패션계 키워드 중 하나는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이다. 닳은 곳을 숨기는 대신 꿰맨 자국을 일부러 드러낸다. 영국의 한 백화점에서는 양말 깁는 바늘과 실이 동났다고 한다. 상당수 명품 브랜드가 공식 수선 서비스를 열었고, 잘 손본 흔적이 있는 가방이 흠 없는 새것보다 빨리 팔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 흐름은 옷을 넘어선다. 요즘은 깨진 자동차 범퍼를 통째로 갈지 않고, ㄷ자 철심으로 옷을 깁듯 꿰매 수리하는 방법이 인기라 한다. 옷을 깁던 손이 이제 자동차를 깁는 셈이다. 새것을 끝없이 사들이던 피로가, 망가진 것을 고칠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만나 만든 변화다. 닳고 기운 자국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안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랄까.
그렇다면 고친 옷은 왜 귀해질까. 어쩌면 사는 것이 제대로 고치는 것보다 쉽고 싼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버리지 않고 고쳐 쓸 만큼 아꼈다’는 사실 자체가 드물고, 드무니 값이 된다. 잘 손본 물건이 더 빨리 팔리고 수선 이력이 가격을 떠받치는 건 그래서다. 게다가 공장은 똑같은 것을 백만 개 찍지만, 기운 자국은 복제되지 않는다. 수선은 양산품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지점이다. 값으로도, 마음으로도 그렇다.
수선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단추를 바꾸고, 터진 솔기를 잇고, 깨진 모서리를 메우는 작은 행위다. 그런데 그 작은 손길이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한 번 손을 댄 물건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고치는 동안 그것을 한 번쯤 더 들여다보게 되니까. 새것을 살 수 있는데도 굳이 고쳐 쓰는 선택은, 이제 여유이자 자신감의 신호로 읽힌다. 새 옷이 내가 무엇을 살 수 있는지 말해준다면, 고친 옷은 내가 무엇을 끝까지 아끼는지 말해준다. 보로가 삼대를 건넜듯, 손이 닿은 물건은 다음 사람에게 건네진다.
당신의 옷장을, 집안을 둘러보자. 한 번이라도 고쳐 쓴 물건이 있는가. 그 자국은 당신이 무언가를 버리지 않기로 한 순간의 서명이다. 닳거나 망가졌다고 너무 빨리 손에서 놓지 마시라. 고치는 순간, 그 물건은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의 것이 된다.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soho09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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