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입사 동기 둘은 같은 월급을 가지고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저는 갭 투자로 아파트를 샀고, 한 명은 오피스텔 두 채를 매입했죠. 다른 한 명은 외제차를 샀어요. 어떻게 됐나고요? 다들 예상하다시피 자산격차는 한참 벌어졌죠.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1992년생 박명석(가명) 과장은 ‘기승전부동산’을 믿는 증권사 영업직원이다.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호가 22억원이 넘는 마포구의 한 아파트를 소유 중이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무일푼으로 서울로 온 박 과장은 어떻게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박 과장의 첫 보금자리는 서울에 먼저 올라와 생활하던 친형의 자취방이었다. 한 푼이 아쉬운 취업 준비생이다보니 형 집에 얹혀살며 주거비를 아껴야 했다. 다행히 자취방 위치는 왕십리였다. 박 과장은 “어디를 가든 교통이 편한 성동구가 살기 좋다고 느꼈다”며 “증권사에 취업해 인천 지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는 회사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했다.

6억대 금호동 아파트, “사겠다” 했더니 부동산에선 “너무 비싸다” 말렸다

취업한 지 1년이 지난 2017년, 그는 자취방 옆 동네인 성동구 행당동·금호동에 첫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제학과를 졸업했다보니 서울 아파트 가격은 수요 초과가 이어져 꾸준히 우상향할 거라고 봤다.

박 과장은 그때부터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행당한진타운아파트, 행당대림아파트,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 금호동대우 아파트 등 일대 부동산 중 그가 가지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처럼 ‘임장’이란 말도 흔히 사용되지 않던 시절이다.

박 과장은 “9년 전만해도 금호동대우 84㎡(이하 전용면적)가 5억~6억원 수준이었다”며 “집값이 슬슬 오르기 시작해 계약을 고민하자, 공인중개사 대표님이 지금 이 가격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니 사지 말라고 만류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공인중개사가 “조금 더 고민해보라”고 보낸 문자를 아직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박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국내 증시상황과 시장 유동성을 고려했을 때, 서울 집값은 여전히 저평가됐다는게 박 과장의 판단이었다. 특히 사통팔달 교통이 뚫려 있는 성동구의 입지는 그야말로 천국처럼 느껴졌다.

금호동대우 아파트 매수를 결심하고 계약금을 넣으려던 찰나, 집주인이 “1억원 더 올려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결국 1차 내 집 마련 시도에 실패하게 된다.

[챗GPT 형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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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기회를 날렸다, 언론에선 ‘길음뉴타운’에 주목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2018년은 2017년보다 집값 상승 속도가 더 빨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18년 1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8.03%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주택가격 급등기의 시작이었다. 박 과장이 눈여겨 봤 금호동대우 아파트는 호가가 8억원으로 뛰었다. 이제는 그 집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언론 기사에선 매일 같이 ‘아직 서울 부동산 덜 오른 곳’을 소개해줬다”며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이 ‘길음뉴타운’이길래 임장을 갔다”고 했다. 처음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때였는데, 대단지 아파트가 모여있고 학교가 많아 처음 간 날 매수를 결심했다고 했다.

박 과장은 “태어나서 처음 가본 길음뉴타운은 굉장히 깨끗했다”며 “언덕이 있었지만 단지 내 엘리베이터가 잘 설치돼 있어 오고 가는데 불편함이 없었다”고 떠올렸다.

특히 1497세대 대단지의 길음뉴타운8단지래미안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실거주하게 된다고 해도, 명동 지점에서 근무하던 그가 4호선을 타고 출퇴근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그렇게 그곳은 첫 집이 됐다.

수중엔 단 5000만원, 7억원 집 이렇게 샀다

당시 박 과장이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은 약 50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길음뉴타운 84㎡의 호가는 7억원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 집을 샀을까.

첫 번째는 전세를 끼고 집을 매입하는 이른바 ‘갭투자’였다. 전세 세입자를 들여 5억원을 마련했다. 교통이 편리하고 초·중·고교가 가까운 길음뉴타운은 신혼부부들의 선호 지역이어서 세입자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첫 세입자도 신혼부부였다.

그 외 그가 선택한 방법은 신용대출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연봉의 1.5배 수준까지 신용대출이 나왔다. 직장 3년 차인 그도 어느덧 연봉이 올랐기 때문에, 신용대출을 1억5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었다. 그는 “대출을 잘 활용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엄빠찬스(부모 자금)’를 활용했다.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1억원을 빌렸다. 박 과장은 차용증을 작성하고 매월 부모님에게 이자를 냈다. 그렇게 집값과 취득세, 수리비까지 감당할 수 있는 7억5000만원의 돈이 마련됐다.

그저 집을 샀을 뿐인데…2년 만에 5억원이 올랐다

2018년에 집을 사고, 그는 4년간 전세를 놓았다. 박 과장 본인은 친형의 자취방에서 살며 버는 족족 신용대출을 갚았다. 빚을 줄여가며 자산을 키우는 ‘빚테크’의 시간을 보냈다.

빚을 갚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빚을 갚는 속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기 때문이다. 2018년 초까지만 해도 집값이 잠잠한 흐름을 보였던 성북구는 그 이후 급격히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성북구의 월간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2017년까지만 해도 가끔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는 등 등락을 거듭했다. 하지만 2018년이 되고 나서 매월 0.46%씩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3월에는 1.47%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마포구(1.55%) 다음으로 서울서 가장 높은 폭의 상승률이었다.

[뉴시스]
[뉴시스]

집값은 계속해서 올랐다. 2018년 7억원에 산 길음뉴타운8단지래미안 84㎡는 2019년 9억4000만원이 되더니, 2020년 신고가 12억원을 기록한다.

2022년 폭락기가 시작됐을 때도 성북구의 집값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2022년 결혼을 하게 된 박 과장은 세입자의 만기 종료에 맞춰 집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도 12억원 가격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집에 오래 살 생각은 없었다. 박 과장은 “2년 안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입주하는 순간부터, 갈아타기를 고려한 것이다.

박 과장은 자신의 첫 집을 ‘점’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집을 샀을 때도 ‘왜 지금 샀어?’라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하지만 ‘점’을 찍고 치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움직인 게 지금의 자산을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평소에 바삐 움직인 것도 그가 재빠르게 집을 살 수 있던 비결이다. 박 과장은 “햇빛이 잘 들고, 층은 높을수록 좋다”며 “평소 임장을 많이 다니면, 각 동별 조망권·일조량을 파악해놨다가 원하는 가격의 매물이 나왔을 때 굳이 집을 안 보고 계약금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혼집에 입주한 지 2년, 그는 2017년 놓친 성동구 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갈아타기’를 위해 다시 임장을 시작한 박 과장은 어떻게 또 다시 2년 만에 8억원을 벌었을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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