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분디부교 바이러스병 유행…현지 진단 공백과 중증 사망 위험 직면

취임 4개월 맞은 이민원 라이트재단 대표의 첫 R&D 긴급 구호 행보

국내의 우수한 분자진단 및 신속 진단 플랫폼 고도화…중저소득국 공급 유도

이민원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라이트재단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이민원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라이트재단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아프리카 분디부교형 에볼라바이러스병 유행에 대해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언한 가운데, 국내에서 분디부교형 에볼라 진단 분야의 연구개발(R&D)에 특화해 지원하는 사업이 단독으로 추진된다.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은 분디부교 바이러스병을 포함한 에볼라 진단 대비·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제품개발연구비 특정분야 지원사업 공고를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지원사업은 지난 3월 라이트재단 수장으로 취임한 이민원 대표의 첫 주요 행보다.

현재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우간다를 중심으로 유행 중인 분디부교 바이러스는 기존 자이르형과 달리 승인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진단을 통한 초기 격리와 전파 차단이 유일한 대응 수단이다. WHO에 따르면 7월 초 기준 DRC 내 확진자는 1600명을 넘어섰고 치명률은 32%에 육박한다.

그러나 유행 초기 현장 지방 검실에서 표준 GeneXpert로 검사한 검체들이 음성 판정이 나왔다가, 이후 국립생의학연구소(INRB)의 추가 분자진단 및 유전체 분석을 통해 분디부교형으로 뒤늦게 확진되는 등 기존 진단 체계의 치명적인 공백이 드러났다. 전문 실험실에 의존하는 기존 RT-PCR 방식은 인프라가 취약한 저개발국 현장에서 검체 이송과 결과 확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한계도 지녔다.

이민원 라이트재단 대표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라이트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의심환자를 신속히 선별하고 확진해 격리하는 것이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 방안”이라며 “국내 기업이 보유한 우수한 진단 기술력을 활용해 글로벌 보건 현장의 공백을 메우고자 이번 지원사업 공고를 결정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글로벌 주요 공여 보건기관별 에볼라 진단 지원 현황
글로벌 주요 공여 보건기관별 에볼라 진단 지원 현황

이번 지원사업은 기초 연구 단계가 아닌, 이미 개념검증이나 예비 성능자료를 확보한 기존 진단제품과 플랫폼을 중저소득국 환경에 맞춰 고도화하고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현장형 분자진단(point-of-care molecular diagnostics)’과 ‘신속진단검사(RDT)’가 우선 지원 대상이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현지 의료 인프라를 고려해 실온 보관이 가능하고, 검체 전처리가 간소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 개발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현재 에볼라 확진검사는 주로 전문 검사실에서 수행하는 분자진단에 의존하고 있어 현장에서 검체를 이송하고 처리한 뒤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환자 가까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현장형 분자진단과 신속진단검사가 확보되면, 의심환자의 신속한 분류와 격리, 확진검사 연계 및 접촉자 관리에 필요한 시간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트재단은 이번 에볼라 진단 R&D 공모에 과제당 최대 5억원을 최대 9개월로 지원하며 긴급 상황에 걸맞은 신속성을 확보했다. 공모 참여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법인 1개 이상이 필수로 포함되어야 하며, 실제 아프리카 현지 임상시험과 검체 확보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중저소득국 소재 기관이나 연구소와의 컨소시엄 구성을 적극 권장한다.

글로벌 보건 공여기관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미국 게이츠재단이 바이오마커 발굴부터 도입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진단기술 R&D 공모를 개시했고, 일본 글로벌헬스기술진흥기금(GHIT Fund)도 긴급 공모 체계를 가동했다. 이에 비해 라이트재단은 국내의 검증된 바이오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을 단기간 내 고도화하여 실제 공공 조달 시장으로 진입시키는 ‘핀셋 지원’을 차별성으로 내세운다. WHO는 지난 5월 말 체외진단제품에 대한 긴급사용목록(EUL) 신청 절차를 개시한 상태다.

이 대표는 보건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 국제협력담당관,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장, 제네바 대표부 보건관 등을 거치며 30년간 글로벌 보건 행정 일선에서 활약한 베테랑이다. 이 대표는 “과거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국내 진단 기업들의 R&D 역량과 인류 공헌에 대한 사명감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이번 사업이 국내 진단기술이 국제보건 현장의 수요에 보다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라이트재단은 보건복지부와 게이츠재단,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민관협력 기금이다. 2018년 출범 이후 백신, 치료제, 진단기기 등 누적 82개 연구개발 과제에 총 1417억원을 지원하며 보건 형평성 증진에 앞장서 왔다.

이 대표는 “에볼라와 같은 취약 지역 감염병은 시장 규모와 상업성이 낮아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투자를 지속하기 어렵다”라며 “정부와 국제 공여기관, 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는 라이트재단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 기술이 인류의 보건 형평성 제고와 감염병 퇴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 대응 로드맵을 확고히 다져나가겠다”고 밝혔다.


silverpap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