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규모 따라 등록 면제…투자계약·토큰 분리 기준도 제시

“중권 등록 없이도 최대 70억원 가상자산 펀딩 허용”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PA]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자산 업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맞춤형 규제안을 내놨다. 가상자산 기업이 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때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증권 등록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미 의회에서 가상자산 시장 구조를 규정하는 법안 논의가 지연되는 가운데 SEC가 자체 규정 마련에 나서면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친(親)가상자산 정책에도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SEC는 18일(현지시간) 가상자산과 관련된 특정 투자계약에 별도의 증권 발행 체계를 적용하는 ‘가상자산 규정’(Regulation Crypto Assets)을 제안했다.

그동안 가상자산 기업들은 토큰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증권법이 적용되는지, 적용된다면 어떤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에 직면해 왔다.

이번 제안이 확정되면 가상자산 기업들은 자금조달 규모와 방식에 따라 별도의 증권 등록 면제 경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SEC가 제시한 첫 번째 경로는 ‘스타트업 면제’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초기 단계 프로젝트는 최대 4년 동안 500만달러 규모까지 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는 한 차례 이용할 수 있는 등록 면제 제도로, 발행사는 면제 기간의 시작과 종료 시점에 SEC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투자자들에게 일정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두 번째는 보다 큰 규모의 자금조달을 위한 ‘자금조달 면제’다. 이 제도는 2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12개월 동안 최대 2000만달러, 2단계에서는 최대 7500만달러 규모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두 가지 조치 모두 증권 등록 의무를 면제할 뿐, 증권법상 투자자 보호 장치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에게 일정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사기와 시세조종을 금지하는 증권법 규정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 제안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가상화폐가 언제 증권법상 ‘투자계약’과 분리될 수 있는지를 제시한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이다.

SEC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고 발행사가 투자자에게 약속했던 핵심적인 경영·개발 활동을 완료하거나 영구적으로 중단한 경우, 해당 가상화폐가 기존에 연계돼 있던 투자계약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가상화폐 시장의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번 조치는 미 상원에서 가상화폐 시장의 포괄적인 규제체계를 담은 ‘디지털자산 시장 명확성’(클래러티)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폴 앳킨스 위원장은 성명에서 SEC의 이번 발표에 “혁신가들의 오랜 고민에 대한 SEC의 답변”이라며 “가상자산 사업가와 시장 참여자들에게 연방 증권법에 따라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명확한 경로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다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규제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의회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번 규정은 즉시 시행되는 확정 규정이 아니라 제안 단계로, 연방 관보 게재 후 60일간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가상화폐 업계 리더들이 오는 19일 백악관에서 후속 회의를 할 예정이어서 향후 정책 방향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