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발의 총성, 사라진 두 개의 탄환
영부인 저격 사건의 미스터리 소재
억압의 시대에 저항했던 이들의 얼굴
정우성·박정민·엄태웅 등 초호화 캐스팅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추석 연휴 극장가를 찾는 허진호 감독의 신작 ‘암살자(들)’에는, 영화 제목으로는 좀처럼 쓰지 않는 ‘괄호’가 들어간다. 영어 제목도 예외 없이 ‘The Assassin(s)’다. 이 낯선 제목과 마주한 관객이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른다. 왜 영화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를 괄호로 넣는 모험을 했을까.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많은 단어가 그러하지만, 유독 ‘암살자’라는 말은 복수형이 됐을 때 남다른 폭발력을 지닌다. 가장 흉악하고 중대한 범죄가 한 사람만의 범행이 아니게 되는 순간, 문제는 하나냐 둘이냐를 넘어 훨씬 더 복잡하고 거대해진다. 암살의 대상이 영부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쯤 되면 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 50여 년 전, 온 나라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은 정말 재일교포 청년의 단독 범행이었을까, 아니면 그를 장기 말로 이용한 더 큰 배후 세력이 존재했던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되새김질 되는 이 질문이, 괄호 안에 갇힌 글자 하나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신한다. 우리 영화사 최초로 1974년 영부인 저격 사건의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다.
‘암살자(들)’는 그해 광복절 경축식에서 벌어진 저격 사건의 진실을 쫓는 이들을 따라가는 추적극이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풀리지 않은 그날의 의문을 불씨 삼아, 아직 맞춰지지 않은 조각들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완성했다.
영화에는 크게 네 축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국가 원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한 남자,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발길질도 서슴지 않는 국가, 그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경찰, 그리고 검열에 맞서 사실과 진실을 끊임없이 쫓는 언론이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사건 현장에 있었던 중부서 경감 철구(유해진 분), 베테랑 기자인 동성일보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분), 그런 재환을 따라 취재 현장에 뛰어드는 막내 기자 영일(이민호 분)의 선택과 행동을 따라가며, 누군가에 의해 감춰졌을지도 모를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경축식이 막 시작된 국립극장 안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여섯 발의 날카로운 총성에서 출발한다. 품속의 총을 꺼낸 한 남자가 연단으로 뛰어나가며 연신 방아쇠를 당기자 연단 옆에 앉아 있던 영부인의 몸이 의자에 축 늘어진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범인은 그 자리에서 제압된다. 행사의 경호를 담당했던 경찰 철구, 취재를 나온 기자 영일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철구는 자신이 비표 없이 입장하려는 것을 제지했지만 대통령 경호계장(엄태웅 분)이 그대로 들여보냈던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범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그날도 어김없이 검열과 신경전을 벌이던 사회부장 재환은 텔레비전 생중계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다. 영일은 재환에게 영부인이 총에 맞았으며, 객석에 앉아 있던 여고생도 함께 총에 맞아 실려 간 사실을 전한다. 동성일보의 기자들은 모두 재환의 지시 아래 이날의 총격 사건 취재에 투입되고, 그 사이 영부인과 여고생은 결국 숨을 거둔다.
당국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범인이 조총련에 가담한 재일교포 문세광이라고 발표한다. 재환은 지나치게 준비된 듯한 당국의 브리핑과 뭔가를 숨기는 듯한 분위기에서 이상함을 눈치챈다. 경찰인 철구는 경호 미비에 대한 책임의 화살이 온전히 자신과 동료들에게 향하는 것에 분노하며 사건에 깊숙이 파고든다. 결국 그는 사건 현장에서 총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렸지만 발견된 탄환은 단 네 개뿐이며, 범인이 범행 전 어떤 남자와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철구는 자신이 수사한 것을 기자인 재환과 공유한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정황과 증거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총격 사건은 북(北)을 추종하는 재일교포 청년의 단독 소행이 아니다’라는 것. 그렇다면 문세광과 함께 있던 남자는 누구일까. 정말 사건은 문세광 혼자 계획하고 실행한 것일까. 그리고 ‘진실’을 쫓는 이들을 집요하게 가로막고 방해하는 세력은 대체 누구일까.
하나의 단서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그 의문이 다시 인물들을 사건의 중심부로 끌어당긴다. ‘암살자(들)’은 미스터리 추적극에 시대극이라는 리듬감을 더해, 팽팽한 호흡을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대통령 경호 책임자가 범인을 행사장에 들여보내고, 범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당국이 먼저 그의 정체를 발표하고, 감식반의 현장 출입을 막는 등 수많은 미심쩍은 정황들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으로 관객을 밀어 넣는다. 사건이 결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님을 말해주는 사이, 관객은 인물들과 함께 점점 더 깊은 의혹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 애국으로 포장되던 시절의 모습은 서사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격동하는 70년대 특유의 색감과 공기, 검열이 일상이던 신문사의 풍경까지, 화면 하나하나가 대사 없이도 그 시절의 억압과 긴장을 전달한다. 별것 아닌 농담에 빨갱이로 낙인찍혀 남산으로 끌려가던 시절이었다. 유신이란 이름으로 폭압이 정당화됐고, 긴급조치란 칼날에 나라가 숨죽이던 시절이었다. 마치 보도사진을 연상시키는 시대의 미장센은 영화가 단지 그 시절을 추억으로 비추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기억의 소환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이 땅을 짓누르고 있던 시간에 대한 증언에 가깝다.
‘암살자(들)’은 큰 줄기에서 풀리지 않은 의문을 파고들지만, 그 과정에서 서슬퍼런 이 시절에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깊게 전한다. 그 안에는 국가가 전례 없는 성장 사다리를 타고 질주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도 뜨거웠던 시절의 민낯이 있다. 애국과 애민이라는 구호 속에 묻혀 국가에 의해 재단됐던 목소리, 그럼에도 끝내 굽히지 않았던 이들의 몸부림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애국이라 믿으며 살아온 철구는, 자신이 지키려 했던 그 국가로부터 사건의 책임을 떠안게 되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충성해 온 대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취재를 이어갈수록 검열과 외압이라는 벽에 자꾸만 가로막히는 재환과 영일 등 동성일보 기자들은,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정론을 향한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자유와 진실이라는 당연한 권리가 사라진 시절이 마치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영화는 되새긴다.
그 와중에도 영화는 마지막까지 ‘암살자(들)’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 이들이 영화 속에서 ‘들’로 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감독의 캐스팅 선택의 역할이 크다. 영화에는 정우성, 엄태웅, 박정민, 유연석을 비롯해 심은경, 오달수, 박성훈, 배성우, 오정세, 신현빈 등 주연급 배우들이 짧은 등장을 위해 대거 합류했다.
배우들이 가진 각자의 무게는 잠깐의 등장만으로도 진실 위에서 그들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리게 만든다. 이들이 비칠 때마다, 그 캐릭터가 공범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관객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영화는 스크린 위 거의 모든 얼굴을 잠재적 용의선상에 올려둔 채, 끝날 때까지 누구도 온전히 믿지 못하게 하며 사건을 좇게 만든다. 하지만 예고 없이 등장하는 익숙한 얼굴들이 극의 몰입을 방해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박해일과 유해진, 이민호를 필두로 한 주연들의 연기력은 굳이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다. 특히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박해일이 그려낸 재환의 처절함과 결연함은 유독 여운이 길다. 시대의 정치적·외교적 이해관계가 영화적 상상력 안에 촘촘히 얽혀 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겁기만 하진 않는다. 추적극 특유의 속도감과 배우들이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그 무게를 적절히 덜어낸다.
극장을 나서며 끝내 지워지지 않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흥미로운 소재와 믿고 보는 캐스팅, 시대극 특유의 무게감이 절묘하게 배합된 ‘암살자(들)’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추석 극장가를 채울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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