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엔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C가 국내 거래소 상장 직후 37.6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1엔은 약 8.85원이었다. 일본에서는 1엔인 코인이 국내에서는 4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JPYC는 이후 8.64원까지 떨어졌다. 고점에서 매수한 투자자라면 단기간에 약 77%의 평가손실을 본 셈이다.

이름은 ‘스테이블’이지만 가격은 전혀 ‘스테이블’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준비자산과 상환 장치를 갖췄다고 해도 국내 거래가격까지 저절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환매 통로와 유동성이 부족하고 지원 네트워크마저 제한되면 가격은 수급에 따라 요동친다. 상장 초기 물량 부족과 투자자의 오해가 겹치면서 ‘1엔짜리 코인’에 거대한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를 일부 투자자의 판단 착오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거래소가 상장 전 유통량과 유동성을 충분히 검증했는지, 기준가치와 시장가격의 괴리를 제대로 알렸는지 따져봐야 한다. 외국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상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을 때 거래소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시장은 이미 국경을 허물고 질주하고 있지만 우리의 법은 여전히 출발선에 머물러 있다. 국회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논의하는 동안 시장의 빈자리는 달러가 채웠다.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 등 달러 연동 코인은 국내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중심이 됐다. 원화는 디지털자산을 매수하기 위한 ‘입구’에 머물고 글로벌 거래와 송금·예치·대출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입법 지연은 단순한 현상 유지가 아니다. 법이 없는 사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은 커지고 원화의 입지는 좁아진다. 디지털자산 시장이 성장해도 그 과실이 국내 금융산업보다 해외 발행사와 블록체인 생태계에 돌아갈 수 있다. 제도가 비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디지털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도 어려워진다.

통화주권도 걸려 있다. 외화 스테이블코인이 투자 수단을 넘어 결제와 송금, 예치 영역까지 장악하면 국내 자금 흐름에 대한 정책당국의 가시성과 통제력은 떨어진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해도 자금이 달러 코인 생태계 안에서 움직이면 통화정책의 전달력도 약해질 수 있다. 디지털자산 문제가 더는 투자자 보호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외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는 국내 대리인 지정과 준비자산 공시, 상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거래소에는 상장 전 유동성 검증과 가격 괴리 공시, 이상 급등 시 주문 제한 등 투자자 보호 책임을 지워야 한다. 발행과 유통, 상장과 상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질 주체도 명확히 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은행 예금토큰, 한국은행 디지털화폐의 역할도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 생태계를 갖추지 않은 채 외화 코인의 확산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디지털 금융의 주도권을 스스로 내주는 결과가 된다.

신속한 입법이 졸속 입법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완벽한 해답을 찾겠다며 시장을 계속 방치하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 기본적인 책임체계와 투자자 보호 원칙을 먼저 세우고 기술과 시장 변화에 맞춰 세부 규정을 보완하면 된다.

새로운 스테이블코인은 앞으로도 국내 거래소에 등장할 것이다. 그때마다 투자자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은 이미 열렸고 돈은 움직이고 있다. 이제 국회가 법과 책임을 시장 안으로 들여놓을 차례다.

이정환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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