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올리면 경영환경만 악화 퍼주기식 복지공약 치중 큰부담 정책반영땐 글로벌 경쟁력 약화
전경련 해체로 콘트롤타워 없어 재계 긴장속 공동대응 한목소리
오는 5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계가 떨고 있다. 대선 후보 5명 가운데 4명이 재계에 날이 바짝 선 공약들을 줄줄이 꺼내들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입장에선 대선 직후 쉽지 않은 환경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 집중투표제 도입, 일감몰아주기 규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대선 공약 하나하나가 ‘살벌’하다. 졸지에 도매금으로 ‘최순실 부역자’가 돼버린 터라 국민여론도 나쁘다.
재계의 대선 관전포인트는 차기 정부의 크기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다. 문재인 후보는 대표적 수정자본주의 경제학자 ‘케인즈’를 끌어들이며 정부 역할을 키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문 후보의 반대편에 선 안철수 후보는 ‘일자리와 경제는 민간 주도가 맞다’며 각을 세운다. 재계 맏형 역할을 해왔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와해로 재계 단체들이 몰아치는 파도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재계, 우려와 긴장감=재계의 걱정은 지난 14일 문재인 후보의 대한상의 초청토론회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박용만 회장과 문 후보 사이 오간 대화가 단적이다. 이날 박 회장은 문 후보에게 ‘경제학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문 후보가 곧바로 이를 받아 “그 다음 말이 무엇인지 아시냐. 정치의 과제는 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주의 틀 내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게 저의 경제철학”이라고 말했다. 지지율 1위 후보와 재계 단체 수장 사이의 대화엔 우려와 긴장감이 뒤섞였다.
재계 관계자는 “20세기 전반은 케인즈학파의 시대였고, 20세기 후반은 시카고학파의 시대였다”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는 의지가 문 후보가 쓴‘케인즈’란 단어 하나에 강하게 반영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일단 선거전이 진행되는 중인만큼 후보별 공약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낀다. 어느 한측의 공약을 지지 또는 비판했다간 자칫 특정후보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계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경제의 예측가능성이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신뢰회복, 혁신 기반의 재구축, 규제 선진화, 저출산 대응 관련 정책을 추진하면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더 만들고 돈을 더 벌어 성실히 납세를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법인세 인상, 세제혜택 철폐 및 감소 등 대기업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분배’ 위주의 복지공약은 기업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이들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될 경우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는 불보듯 뻔하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대 쟁점 ‘법인세’=법인세 인상은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당장 매달 내야하는 세액 급증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각종 세액공제 혜택이 급격히 줄어들어 실효세율 자체가 상향되는 상황에서 법인세마저 오를 경우 기업 경영환경은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 특히 재무 구조가 열악한 중소기업들은 법인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경상 대한상의 기업환경본부장은 “OECD 대부분의 국가들은 법인세를 낮춰서 경기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은 법인세를 20%에서 오는 202년까지 17%로 낮출 예정이다. 중국도 2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첨단기업의 경우 15%로 낮춰줬다. 미국 역시 법인세 최고세율을 15%로 낮추겠다고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명목법인세 최고세율이 24.2%(지방세 포함)로 OECD 국가 가운데 19위다. OECD 국가의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은 23.2%다. 한국은 지난 2009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고 이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큰 정부’와 법인세 인상은 상관 관계를 띈다. 법인세 인상 등으로 정부의 곳간을 채워 이를 기반으로 정부가 직접 고용에 나서는 형태의 정부를 ‘큰 정부’라 칭하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4명이 내건 차기 정부의 지향점은 세금을 더 걷어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시행하고, 이를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시기와 방법 구체적 세율 인상의 폭은 추가 논의를 하더라도 세금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경업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실장은 법인세 인상 논란과 관련 “세율을 올렸을 경우 경기 활성화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법인세다. 가장 적은 것은 부가세”라며 “부가세가 역진성이 있다고 하는데, 부가세 감면 혜택 등을 고려하면 역진성은 거의 뉴트럴(중립)에 가깝다. 세율 인상이 필요하다면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콘트롤 타워’가 없다=재계가 걱정인 것은 재계 단체 맏형 역할을 맡았던 전경련의 해체와, 대기업 가운데 세련되게 ‘대관(對官)’을 담당하던 삼성의 부재다. 전경련은 최근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면서 직원들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등 와해 직전 상태고, 삼성은 총수 부재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한 대관팀이 포함됐던 미래전략실 전체가 자진 해체 된 상태다.
문재인 후보는 징벌적손배제 도입을, 안철수 후보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제기 활성화를, 유승민 후보는 비정규직 채용 제한을, 심상정 후보는 아예 재벌 해체를 선언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에 대한 대응역을 맡을 만한 ‘조직된 힘’의 두축이 무너진 상태다.
그나마 눈에 띄는 단체는 대한상의 정도다. 상의는 지난 2월 ‘탈정치’를 선언하면서 윤리경영 실천과 정경유착 고리와의 단절을 선언한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진보와 보수 경제학자들이 함께 만든 제언집을 대선후보들을 직접 만나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 대선후보 5명을 일일이 초청해 강연을 한 것도 큰 역할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경제 위기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계 제언’을 통해 정치권에 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적 입법을 지양해 달라는 주문을 넣은 바 있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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