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대선토론회 화자 혼동” -1명이 2시간동안 수화…“피로도 높아” -선관위 “통역사 배치는 방송사 결정”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청각장애인 윤모(52) 씨는 지난 23일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1차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시청하다 채널을 돌렸다. 수화통역사 1명이 토론 내용을 전달해주긴 했지만 내용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윤 씨는 “통역사 한사람이 후보자 5명과 사회자의 말을 모두 전달하니 누가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며 “전반적으로 토론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25일 대선을 약 2주 앞두고 후보자 토론회가 연속으로 열리는 가운데 청각장애 선거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사회자 1명의 주재로 대선 후보 5명이 토론에 참여했다. 대부분의 방송사가 수화 통역 중계를 제공했으나 일부 방송사는 이를 생략했다. 토론이 진행되는 2시간동안 수화 통역을 맡은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관위가 개최하는 대담 또는 토론회는 “청각장애선거인을 위해 자막방송 또는 수화통역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수화통역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수화통역사 1명이 토론 내용을 모두 책임지는 것은 체력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년차 수화 통역가인 김철환 씨는 “통역사 체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통역 시간이 30~40분을 넘어가면 육체적인 피로도가 높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수화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 수 있다”며 “대선 토론의 중요성을 감안하고 후보 5명의 철학과 정책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최소한 2명의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스탠딩 토론’이 이번 대선에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기존의 수화 통역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일 한국복지대학교 수화통역과 교수는 “예전 토론 방식의 경우 화자 1명이 말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수화통역사 1명이 감당할 수 있었지만 자유 토론 방식 도입 이후 토론 중간에 화자가 겹치거나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수화는 보통 1인칭 시점으로 하면서 주어 생략되기 때문에 통역사 1명이 자유 토론을 통역하면 내용 전달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 토론과 관련해 지침만 마련돼도 청각장애인의 불편이 크게 줄 것”이라고 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수화 통역사와 관련된 결정은 방송사의 재량이라는 입장이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관계자는 “토론회에 투입되는 통역사 수는 방송사가 결정하는 사항”이고 “현재로선 통역사 증원을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비영리 장애인 단체가 페이스북에 생중계한 대선 토론 수화 중계가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사회자 1명과 후보자 2명에 맞춰 각각의 통역가를 둔 덕에 청각장애인에게 최적화된 토론 방송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별도 자막은 물론, 수화통역 화면도 전체 화면의 약 20%를 차지해 청각장애인이 수화 중계를 보는데 무리가 없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2년 한국농아인협회가 방송 3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18대 대통령 선거 토론 방송의 수화 통역 화면을 17대 대선때보다 30% 이상 확대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대선 토론의 수화통역 화면이 약간 커지긴 했지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의 평가다.
대선 토론 수화 중계와 관련해 장애인단체인 장애인정보문화누리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청각장애인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3만 5000여명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250만여명 가운데 약 10%에 육박하는 비율로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 다음으로 높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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