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센터로 첫 사업시작, 손대는 일마다 좌절 ‘마이너스의 손’ 죽음앞에서 찾은 ‘역발상 창업’ 숱한 창업자에 빛 선물,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

콱 죽어버리려고 했다. 1986년, 29살에 불과했던 이형석(60) 씨는 호주에서 삶을 등질 참이었다. 그는 영화 속 ‘빠삐용’이 뛰어내렸던 절벽에 서 있었다. 녹슨 철조망이 시야를 차단했지만, 발 아래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또렷이 보였다. 태평양에서 쉼없이 달려온 파도는 강철 같은 바위절벽에 온몸을 으깨고 있었다.

1982년부터 시작한 사업인생. 백절불굴의 강인한 정신력이면 맨손으로 호랑이도 때려잡을 것 같았다. 국내 최초로 심부름센터를 열었다.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는 의뢰인의 무리한 요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첩보요원처럼 의뢰인 남편의 뒤를 살금살금 밟았으나 어찌나 어설펐던지, 하루도 안돼 발각됐다. 두 번째 사업은 국제행사대행업이었다. ‘맨파워뱅크’사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통역사, 속기사 등 고급인력을 양성했다. 그러나 1984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생기면서 인력이 모두 빠져나갔다. 실패의 맛은 쓰디 썼다.

마포대교 걸으며 득도하듯 아이디어가

이후 톡 쏘는 ‘크림소다’의 부드러운 맛에 반해 홍콩에서 칵테일 원료를 수입했다. 부리나케 음료제조업체에 달려가 사업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번번히 퇴짜 맞았다. 야심차게 시작한 ‘DIY(Do It Yourself)’ 가구 사업, 토플 교육업도 단명했다. 이쯤 되니 실패는 발가락에 피어난 무좀처럼 지독하게 익숙해졌다. 1985년부터는 부도가 난 중소기업의 물건을 파는 영업회사를 차렸다. 한때는 137명의 영업사원을 거느렸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도 잠시, 상품제공업체가 부도나면서 1억원이라는 빚이 부메랑으로 안겨졌다. 각기 다른 업종에서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모두 실패라는 마침표로 귀결됐다.

이쯤 되니 스스로의 무능함에 신물이 났다. 거추장스러운 육신을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겠노라고 다짐했지만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발이 절벽에 꽁꽁 묶인것만 같았다. 어느덧 해가 수평선에 잠겼다. 얼떨결에 버스로 향하는 무리에 뒤섞여 탑승했다. 그렇게 입을 우악스럽게 벌리며 그를 집어삼키려는 성난 파도를 등졌다. 찰싹거리는 물결이 귓바퀴를 맴돌았다.

목적지도 모른 채 버스에 넘실넘실 실려 갔다. 종점에서 내리니 골드코스트의 해변이었다.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걸었다. 시공간이 뒤틀린 것처럼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무언가가 어깨를 툭 쳤다.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려보니 산타 모양의 헬륨풍선이 허공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죽어버린 뇌세포가 번뜩 살아났다.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헬륨풍선 끈을 생명줄처럼 잡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헬륨풍선을 직접 만들기 위해 두달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우연히 먼저 개발한 업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실패했다는 마음에 다리의 힘이 탁 풀렸다. 터덜터덜. 그날 마포대교를 걸으며 김세환의 ‘길 잃은 사슴’을 불렀다.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 길을 잃고 헤매던 사슴한 마리….”

갈라진 목젖으로 절박한 삶의 노래를 읊조리고 있자니 문득 낙오자가 나 하나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실패경험을 응축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사업 성공을 위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해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면….’ 스스로 창업전문상담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자, 창업 그 자체가 사업 아이템이 됐다.

‘국내 1호 창업 컨설턴트’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 원장의 지난날 스토리다.

이 원장은 1988년 12월 ‘한국사업정보개발원’을 내면서 재기의 심지를 당겼다. 예비 창업자의 자금보유 규모, 적성 등을 고려해 최적의 사업분야를 찾아주고 창업절차를 안내했다. 특정 아이템의 내수 수출과 시장조사도 대행했다. 돈이 없이 아이디어만 있는 사람에게는 자본주를 연결해줬다. 그렇게 그는 1호 창업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갖게 됐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예비 창업자들이 그의 손 끝에서 길을 찾았다. 그가 1989년부터 안착시킨 사업만해도 노래방, 도서대여점, CD대여점 등 수십 가지에 이른다.

빅데이터는 창업의 ‘나침반’=이 원장은 일찍이 ‘빅데이터’의 가치를 실감했다. 그는 누구보다 수집된 정보의 가치를 믿는다.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예비 창업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2002년부터 창업 컨설팅에 빅데이터를 분석,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2005년에는 한발 더 나아가 ‘착착 상권 분석’이라는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전국을 1800개 상권으로 나눴다. 유동인구ㆍ주민수 선별ㆍ인구수ㆍ월소득ㆍ월소비지출 같은 통계 변수 총 28개 항목을 입력해 모든 변수를 계산했다. 예비 창업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가게를 열어야 성공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빅데이터에는 상식으로 해석이 안되는 팩트(fact)가 숨어 있습니다. 창업을 머리로만 승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빅데이터는 유동 인구와 역세 상권에 숨겨진 허상, 사회적 통념을 벗겨낸다.

몇가지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 원장은 ‘대게 전문점’을 분석하다가 이상하리만치 카드매출이 적게 나타난 점을 발견했다. 현지 조사 결과 현금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한 마리에 18만원인 박달대게를 굳이 현금결제를 했다는 것은 동행자가 가족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 점주는 “대구 소재 대학의 한 교수가 카드로 결제했다가 부인의 탐문조사에 걸려 이혼한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편의점 사례를 통해서도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고한’이라는 낯선 지역에 11개 점포가 있는데 평균매출액이 무려 1억4700만원이었다. 전국 최상위권 매출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명이라 자세히 봤더니 카지노가 있는 정선군의 읍 이름이었다. 고한은 돈 잃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카지노 난민들이 편의점 가공식품으로 연명하는 곳이었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창업의 나침반 역할을 해줍니다. 어떤 업종이 최근 성장세이며, 어떤 특성을 가진 지역이 가장 잘되고, 소비자는 어떤 구매행태를 보이는지 등에 대해 세부적인 정보를 알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창업 후에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요 고객층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신뢰를 먹고 자라는 ‘플랫폼비즈니스’=이 원장은 올해 주목해야 하는 창업 트렌드로 ’플랫폼비즈니스‘를 꼽는다. 플랫폼비즈니스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있다. 아침에 콜택시앱(우버ㆍ카카오택시)으로 택시를 불러 출근하고, 점심에는 맛집 추천앱(망고플레이트ㆍ식신)을 통해 찾은 식당에 가고, 결제서비스앱(네이버페이)을 통해 돈을 지불하는 사회다. 오후에는 숙박앱(에어비앤비ㆍ여기어때ㆍ야놀자)을 통해 주말에 놀러 갈 호텔을 예약하고, 퇴근 후에는 음식배달앱(배달의 민족ㆍ요기요)을 통해 야식을 주문한다.

이 모든 서비스가 플랫폼비즈니스다. 자사 사이트, 어플 등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준다. 플랫폼비즈니스는 사용자들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도와주고 가치를 공유하도록 유도해 브랜드의 가치를 확보한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협력, 연결, 융합이 필수적인데, 이는 ‘신뢰’라는 심리 자산을 바탕으로 합니다.”

신뢰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고 의지함’이지만 경제적 정의는 ‘상대 능력이나 의도에 대한 기대’를 뜻한단다. 상대방이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정보가 사실로 입증되면 신뢰가 쌓이고,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신속한 정보교환과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단다.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된 네트워크는 충성도가 강하고 전파 속도가 빠르다. 그만큼 빠르게 트래픽을 증가시킬 수 있어 광고수익이나 거래 수수료 수익으로 직결된다. 이 원장은 “4차산업혁명 시대는 ‘속도전’”이라며 “정보교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앞서 언급한 음식배달, 퀵서비스, 택시예약 등의 플랫폼비즈니스는 이미 레드오션이지만 ‘정보형 서비스’ 분야는 아직 초기 창업가들에게 열려 있다”고 했다. 정보형 서비스 분야는 여행ㆍ이사ㆍ육아ㆍ반려동물 위탁 관련 서비스 등 비정기적이고 특정 목적을 가진 대상에 집중하는 서비스다.

‘전문 서비스’ 분야도 전망이 밝단다. 특정 전문 분야에 해박하다면 의료ㆍ법률ㆍ세무ㆍ심리상담ㆍ컨설팅ㆍ번역ㆍ교육ㆍ문화 등 전문가와 수요자를 연결시키는 매칭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플랫폼비즈니스는 한창 진행 중이지만, 현재 상용중인 서비스는 아직까지 이런 특화 분야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정향(定向) 창업, 인생을 길게 보는 지름길 =‘나의 길은 내가 정해야 한다.’ 그는 이를 정향(定向)이라 표현한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상담 온 창업자들의 첫 질문은 대체로 “요즘 뭐가 잘돼요?”다. 질문에 자신은 빠져 있다. 성공한 창업자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려고 할 뿐, 자기가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업종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창업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창업은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가치가 돼야 합니다.”

그가 창업컨설팅을 통해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비 창업자가 잊고 있었던 자신의 열정, 꿈, 기억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믿는 이유다.

“20대와 30대에 연이어 실패하면서도 단 한가지 놓지 않은 게 있다면 나 자신에 대한 신뢰였어요. 눈 앞의 성공이 아닌, ‘롱텀 아이템’을 찾기위해 실패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면서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중장년층을 위한 팁도 내놓는다. “60대 이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장기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단계적으로 성취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얘기라 좀 쑥스럽습니다만, 나이 60에 남들은 은퇴할 시기인데 누구보다 바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서 터트린 너털웃음이 꽤 인상적이다.

박로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