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코노프블라디미르(45, 귀화 후 법적 이름, 본명은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는 참 특이한 삶을 살고 있다. 러시아(정확히는 소련) 출신으로 한국국적을 취득(2001년)해서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대학교수로 살고 있다. 한국이름이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박노자(朴露子)인데, 진보신당 비례대표(2012년 총선) 6번을 받을 정도로 많이 ‘빨간’ 사람이다. 지금도 유명신문에 칼럼을 쓸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데 그는 2013년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다른 한국사람들과 함께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라는 책을 냈다. 제목 그대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구석구석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살펴봤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칭송하기 바쁜 얄팍한 복지예찬론이 아니라, 인종차별 등 노르웨이의 속살까지 조명했다. 어쨌든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이쯤이면 한국이 배울 게 참 많지 않은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충분하다. #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며칠 후(9일)면 패럴림픽이 시작된다. 평창 평양 평화 등 시작부터 끝까지, 참 많은 뉴스가 쏟아졌다. 진한 감동도 때로는 분노도, 그리고 환희도. 그런데 이 평창 기간 중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가 “동계 종목은 장비와 돈이 들어가니까 역시 잘사는 나라들이 잘한다”였다. 실제로 노르웨이 독일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이 톱5를 이뤘고, 그 뒤를 스웨덴과 한국(7위)이 따랐다. 톱10에 아시아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고, 7개 나라가 유럽국가였다. 이러니 동계 올림픽은 잘사는 나라들의 잔치이고, 이걸 개최하고 7위에 오른 한국도 자부심을 가질 법도 하다.
#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이틀 저녁을 요르겐 페르손(52)이라는 탁구 레전드와 함께 보냈다. 얀 오베 발트너(53)와 함께 1990년대 세계 최강 스웨덴 남자탁구를 이끈 그는 스웨덴 NOC 소속으로 평창 현장을 찾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개인적으로 더욱 인상적이었다. 1991년 지바 탁구세계선수권의 남북단일팀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당시 페르손은 2관왕)”, “북유럽에서 인구가 천만인 스웨덴이 맏형격이고, 그 다음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이다. 한일관계처럼 나름 우리들끼리 라이벌 의식이 있는데, 동계올림픽만큼은 노르웨이를 당할 수 없다”. “노르웨이는 어려서부터 국민 대부분이 스키를 즐기고, 잘하는 선수들은 오슬로로 데려와 육성한다. 정말이지 시스템이 좋다”. “스키종목의 인기가 높은데, 하필이면 대회 초반 스웨덴 국왕이 직관한 경기에서 노르웨이에 진 경기가 많아 이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페르손은 서울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연신 스웨덴 선수들의 경기를 확인했다. 한중일이 다투는 바둑처럼 동계올림픽(특히 노르딕스키)에 그들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듯했다. # 동계올림픽 폐회식이 열린 25일 좌파매체인 ‘민중의 소리’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보도했다. ‘노르웨이: 평등주의가 평창올림픽에서 대성공을 낳았다’는 제하의 기사인데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핵심은 ‘노르웨이가 부자여서 동계스포츠를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적은 인구에 예산도 조금인데, 빼어난 시스템과 평등주의 문화로 인해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는 메달을 땄을 때의 짜릿한 순간을 위해 일반인들이 하지 않는 스포츠에 수백억을 쏟아 붓지는 않는다. 93%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1만1,000개의 동네 스포츠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이중 훌륭한 선수가 있으면 엘리트스포츠 센터인 올림피아토펜(Olympiatoppen)으로 데려온다. 노르웨이의 전체 스포츠예산은 1,370만 파운드(약 205억 원)에 불과하다. 영국은 엘리트 올림픽 종목에만 1년에 무려 1억 375만 파운드를 쏟아 붓고 그 중 800만 파운드를 동계 스포츠에 쓴다. 영국이 카누와 조정에만 쓰는 액수 정도가 노르웨이의 전체 예산이다. 노르웨이 선수들은 부족한 돈을 우정(camaraderie, 혹은 동료애)으로 메운다. 선수들 간의 끈끈함이 대단해서 최고의 선수들이 더 가난한 선수들의 트레이닝 캠프 경비를 대신 부담하는 일도 흔하다.’
# ‘동계 스포츠=잘사는 나라’는 지극히 당연하다. 기후적으로 겨울이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 선진국이 많다. 하지만 이 당연함의 내면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같은 잘사는 나라라고 해도 질적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멀었다. 대한체육회는 1년 예산이 4,000억 원쯤 된다. 그런데 평등은커녕 대한체육회 임원이 자원봉사에게 막말과 갑질을 하고, 선수와 연맹은 왕따 레이스와 볼썽사나운 파벌싸움, 그리고 페이스메이커 논쟁까지. 참 험하기만 하다. 물론 평창에서 목표(금 8개, 종합 4위) 달성에도 실패했다. 엘리트체육뿐 아니라 생활체육도 스포츠선진국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 스포츠를 대하는 정치권은 아예 웃긴다. 여당은 자신들이 한 일은 다 잘했다고, 야당은 무조건 깎아내리려고 할 뿐 진짜 ‘국민을 위한 스포츠’는 없다. 이걸 언론도 정파적으로 거든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 중 유일하게 노르웨이만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다. 정부의 투명성이 높아 국민의 세금을 하계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몰라도, 동계올림픽처럼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는 곳에는 함부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톡홀롬과 오슬로는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가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포기했다(실패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국고지원까지 수입으로 잡으면서 흑자올림픽이라고 생색을 낸다(진보마저!). 평화올림픽이면 됐지, 억지를 써가며 흑자까지 챙기려고 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그냥 지금의 ‘평창’과 ‘평화’에 노르웨이한테 ‘평등’이라는 훈수 하나 더 배우는 게 올바른 자세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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