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나락으로 넘실거렸던 논은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이내 차가운 바람이 기습하듯 점령했다. 한 해의 수고를 위로받고 수확의 기쁨으로 뿌듯해야 할 농민의 가슴은 시름이 대신하고 있다. 연이어 발표된 WTO 개도국 지위 포기선언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 타결 소식 때문이다.

농민단체는 즉각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주지하다시피 농업소득은 수년째 정체되어 있고, 도시근로자가구 소득과 견주어 그 격차가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그 주요 원인이 농산물 수입 확대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이 지금 당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며 농민들의 과민반응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전체 경제성장 기여에서 미미한 역할을 하는 농업을 보호하려다 대외 수출이 어려워져 국가경제가 정체되는 상황을 맞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농업이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점잖은 듯 꾸짖기까지 한다. 피터팬은 어른 되기를 거부하고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동화 속 주인공이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댄 카일리는 어른이 되었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퇴행적 심리상태를 일컫는 말로 피터팬 증후군을 설명했다.

우리 농업을 피터팬 증후군에 빗댄 이들은 이제는 농민들 각자 경쟁력을 갖추고 대응해야지 국가의 보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부 주도의 각종 지원금에다 정책 역시 온실이나 인규베이터 식으로 지나치게 과잉 보호위주로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농업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다며 심지어는 더 이상 징징대지 말고 시장경제의 원칙을 따르라고 까지 말한다.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헌법에는 예외적으로 자유 거래를 제한하는 조항들이 있다. 자유경쟁은 개인과 기업에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혁신을 이끄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으로 인한 구조적 불균형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것을 경쟁의 원리에 맡겨서는 오히려 국민 개개인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제한 조항을 두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농지의 거래를 제한하고,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할 것과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국가가 부담하게 하고 있다. 왜 농업에 관한 국가의 역할을 헌법에 적시해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역할은 농민의 이익이기만 할까?

농업을 단순히 비용과 효율을 저울질하는 경제의 논리로만 따진다면 사양산업인 것이 맞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곳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그러나 농업은 국민의 생명,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산업이라는 점에서 경제성의 논리로 재단할 수 없다. 피터팬을 들어 농민을 조롱하는 이들도 농민의 땀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다.

식량주권을 지켜내자는 그 거리에 피터팬은 없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를 바라는 꿈이 있을 뿐이다. 농업에 관하여 경제성에 머물지 않는 큰 틀의 접근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