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통화·유동성 자료’ 분석
1분기 0.64…통계 이후 최저
자금순환 악화 경제심박 저하
신용창출 등 활동속도도 최저
부동자금 자산시장 쏠림 우려
올 1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살포’에 가까운 돈 풀기 정책을 펼쳤지만, 시중에 풀린 돈의 유통 속도는 역대 가장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막대한 규모의 재정·통화 정책이 시행됐지만, 코로나19 충격으로 소비와 투자 등 경제 활동에 원활히 투입되지 못함에 따라 통화 흐름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수준으로 경색된 것이다. 그만큼 활력을 잃은 우리 경제는 다량의 긴급 수혈에도 몸에 피가 돌지 않는 위중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3일 한국은행의 ‘2020년 1/4분기 국민소득’과 ‘2020년 1/4분기 통화 및 유동성’ 자료를 토대로 1분기 통화유통속도를 산출한 결과 0.64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이는 한은이 통화량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0.78~0.85 수준을 유지한 바 있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동안 단위 통화가 거래에 사용된 횟수를 나타내주는데, 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연 환산해 시중 통화량인 광의통화(M2)로 나눠 계산한다. 이 속도가 감소한다는 것은 시중의 적재적소에 돈이 잘 흘러가지 않아 경제의 심박수가 점차 떨어지고 있단 뜻이다.
또 이 속도는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경기가 상승하면 평균 소득 수준이 증가해 현금결제 대신 신용결제를 선호하게 되고 이는 화폐 보유 수요를 감소시켜 유통을 빠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또 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현금 보유 심리가 감소, 화폐의 이동 요인을 높여주는데 결국 올 초 닥쳐온 성장 침체와 저물가 국면에 통화 속도의 하방 압력을 가중시켰단 분석이다.
분기별 유통속도는 2002년만 해도 1에 근접한 수준에서 유지됐지만,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저하에 맞춰 이 역시 지속 하락세에 접어든다. 금융위기 때 0.90선이 깨지고, 2012년 들어 0.80선도 무너졌다가 작년부턴 0.60대에 진입하게 됐다.
M2를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도 3월말 현재 15.25로 역대 최저다. 통화승수는 은행들의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얼마만큼의 통화를 창출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역시 돈의 활동 속도를 보여준다.
현저히 저하된 통화 속도는 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된 부동자금 규모를 봐도 알 수 있다. 한은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금통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국내 부동자금 규모는 3월말 현재 역대 가장 많은 약 1106조원을 기록했다.
경제로 유입되지 않고 대기성 자금으로 남아있는 이 돈은 증시로 추가 편입되거나 결국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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