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개발한 기술 우리 지적 재산으로 남을 것”

‘모방 불가’ 브랜드로 차별화…매우니까 간결히 ‘辛’

‘농심’ 브랜드 그대로 해외에…작년 해외매출 9.9억달러

마지막 당부도 “거짓없는 최고품질로 세계속 ‘농심’ 키워라”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가운데) 회장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82년 신 회장이 ‘사발면’ 출시 시식회의에 참석해 시기을 기다리고 있다. [농심 제공]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가운데) 회장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82년 신 회장이 ‘사발면’ 출시 시식회의에 참석해 시기을 기다리고 있다. [농심 제공]

[헤럴드경제=박재석 기자] 지난해 농심은 매출 2조원(2조6398억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고(故) 신춘호 회장의 고집에서 나온 결과였다.

지난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 신 회장은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 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만든 제품을 고집한 것이다. 그는 농심 설립부터 연구·개발(R&D)부서를 따로 두며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말했다.

라면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제품이었다. 그는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 라면이 간편식인 일본과 달리 주식이어야 하며 값이 싸고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농심’이라는 브랜드도 고집했다. 이는 1970년 선보인 짜장면이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농심은 유명 조리장에게 요리법을 배우고 7개월간 개발해 국내 최초 짜장라면을 선보였다. 하지만 비슷한 제품이 많이 나오면서 농심 제품은 사라졌다.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신 회장은 말했다. 이에 따라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신(辛)’으로 하자”며 1986년 ‘신라면’을 내놨다. 현재 신라면은 연매출 2000억원이 넘는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제품 독창성에 대한 고집은 해외 시장 공략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1990년대 수출 본격화에 앞서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 디자인을 바꾸지 말자”라고 수출 기조를 밝혔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현재 농심은 세계 100여개국에 라면을 공급하고 있으며 지난해 9억9000만달러의 해외 매출을 기록했다.

품질에 대한 고집도 돋보였다. 신 회장은 지난 2010년 조회사에서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프리미엄 라면 ‘신라면 블랙’이 나왔다. 신라면 블랙은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등극했다.

신 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임직원에게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라고 당부했다. 지난 50여년간 강조한 품질의 중요성을 되짚으며, 단순히 물건 판매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갖고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심 관계자는 “신 회장님은 최근까지도 신제품 출시 등 주요 경영 사안을 꼼꼼히 챙기실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크셨다”며 “마지막까지 회사의 미래에 대한 당부를 남기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