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할 자유(요한 샤푸토 지음, 고선일 옮김,빛소굴)=기업의 운영과 관리를 효율적·체계화하는 매니지먼트라는 말은 현대인에게 매우 익숙하다. 인적관리, 참여와 동기부여 등도 마찬가지다. 요한 사푸토 소르본대 교수는 이들 용어가 나치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힌다. 중립적인 말로 여겼던 것들이 나치즘의 행정에서 교묘히 경영학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치 친위대 장군 라인하르트 혼이 종전 이후 어떻게 매니지먼트 학자로 변모했는지 살핀다. 법학자였던 혼은 전체주의의 핵심이었던 공동체를 파고들어 공동체에 헌신하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개인은 공동체에 복종하고 공동체의 수족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독일 민족의 노동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할 필요성에서 고안된 것이다. 혼은 프랑스, 영국, 소련 같은 강대국 틈에서 독일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인종적 우월성 뿐 아니라 생산에 투입, 최대한의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봤다. 종전 후 혼은 나치의 패배를 “충분히 나치 답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매니지먼트학으로 돌아선 그는 군 조직의 역사를 고찰, ‘위임의 위계’ 원칙을 만들어 낸다. 즉 관리직을 맡은 중간 간부급 직원들에게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해준다는 개념이다. 그 자율과 책임은 족쇄가 돼 스스로와 다른 직원을 채찍질하게 만든다. 혼의 경영학은 하르츠부르크 방식이란 이름으로 독일식 시장 경제 체제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 저자는 나치즘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음을 혼의 사상적 궤적을 통해 조목조목 밝혀낸다.

▶우리에겐 과학이 필요하다(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유영미 옮김, 갈매나무)=지구가 둥글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과학적 사실이지만 지구가 평평한 원반 모양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또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실은 생화학 무기라거나 비밀 엘리트 조직들이 코로나 19를 이용해 인구수를 줄이기로 결탁했다는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도 있다. 거짓과 음모, 미신과 가짜뉴스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과학저널리스트이자 물리학자인 저자는 허위와 위선에 맞서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과학적 사고 뿐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직감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직감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게 못된다. 우리의 직감으로는 알기 힘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처럼 굽어진 시공간과 무한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저자는 그렇다고 과학이 완벽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며, 과학은 열린 사고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방법론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과 미신·유사 과학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연결’이다. 과학은 새로운 매듭이 지어지면 기존의 증명된 사실들로 이루어진 망과 연결되며, 확장되고 나아간다. 반면, 미신이나 유사 과학 등 비과학적인 것들은 개별 주장으로만 존재한다. 이들은 과학 지식과 모순되고 서로 논리적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모두가 고립된 자신만의 좁은 망을 형성한다. 책은 실험과 증명, 검증과 반증 등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과학자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발견해온 과정을 통해 무엇을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지적 여행으로 초대한다.

▶산책하기 좋은 날(오한기 지음, 현대문학)=작가 본인을 화자로 내세워 소설 창작 과정을 그대로 노출하는 메타소설 양식의 새로운 소설쓰기를 보여주는 오한기 작가의 신작 소설. 영화사 기획자인 나는 코로나 여파로 월급 삭감과 함께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이다. 팀장은 여름용 공포영화를 기획하라고 하는데 나는 그 쟝르엔 관심이 없던 터라 골치가 아프다. 임금삭감에 부업거리를 찾다가 시간을 잘 쓸만한 대상을 생각하다 그동안 일 때문에 접었던 산책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목적 없이 걷는 건 좀 그렇다. 돈이 들지 않고 감정 소비와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 가성비 좋은 산책의 목적으로 ‘나를 따라가보기’를 정한다. 묵동에서 시작해 문정동에 이르기까지 나를 찾아가보자는 대명제로 시작한 산책은 내가 살았던 아파트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 크리스토퍼 놀런을 만난다. 놀런은 코로나로 ‘테넷’제작이 무산되고 빈둥대다 인플레이션으로 돈 가치가 떨어져 자산관리인의 조언에 따라 서울에 아파트를 사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미래를 향해 달리고 나는 과거를 향해 달리는데 둘이 만난 게 신기하지 않냐며, 영화 출연을 제안한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빠진다. 나는 신년운세 앱에서 본 사주에 기대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믿기로 하고,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말을 되뇌며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누군가의 연출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소설은 불능의 현재에서 미래를 모색하는, 내가 되기의 실험적 삶을 그려낸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생생한 글쓰기가 흡입력이 있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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